- 연습 중인 나를 숨기고 싶어질 때
상심한다. 아니 절망하는 순간이 있다. 종일 자판과 씨름하며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써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간 책 페이지에서 튀어나온 어떤 작가의 글이 논리 정연하고 너무 아름다울 때. 그런 글을 만나 넋이 나간 채 나도 모르게 읽고 또 읽을 때, 마음이 고공에 떠서 책상에 붙은 나를 내려다볼 때 실망과 허무는 밀려온다. 그 글을 써낸 사람이 새파랗게 젊은 작가임을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이 바닥으로 꺼진다.
젊음의 시간이 공평했음을 안다. 그 시간을 채워가는 방식이 달랐을 뿐.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기에 지나버린 젊음이 아까워 가슴을 쓰리다. 젊은 작가의 날이 선 칼날 같은 글이 내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다. 그의 글은 동어반복이 없고 고리타분한 은유가 섞여들 여지를 두지 않아 마냥 팽팽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흙탕물에 유쾌한 메기를 풀어놓은 듯 마구 휘저었으나 어지럽지 않았고 생동감 있었다.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대부분이 지난한 연습의 결과라는 말은 분명 맞을 것이다. 완벽한 선 하나를 긋기 위해 20년을 붓을 잡아 긋듯이, 수천수만의 도자기를 깨서 버리듯 마침내 아름답다고 인정받는 모든 것은 연습에게 빚진 것이다.
정작 연습은 음지에서 숨쉬기도 벅찰 만큼 고통받고 있는데, 아름다움을 향한 찬사는 오로지 아름다움의 몫이다. 나는 그저 아름다운 결과물의 한 페이지를 읽고 상심하는 것이다. 젊은 작가가 밤을 새워 밀어냈을 지우개 똥을 생각하지 않고서.
나는 그 연습의 시간을 끝까지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완성된 아름다움 앞에서 나를 안전한 곳으로 물리고, 마음이 작아지는 쪽을 택한다. 나는 부러움이라는 말을 앞세워 그 작품 곁에 서지만, 그 말이 나를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은 아닐까. 밤을 새우며 버려졌을 문장들, 수없이 긋고 지웠을 선들 대신, 나는 어느새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하면 지금의 나를 더 밀어붙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시선은 감탄처럼 보이지만,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독자의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잠시 선택한 태도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직 연습 중인 나를 숨겨두려는 마음의 기만일지도 모른다.
상심은 후회를 남긴다. 그러나 후회는, 그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가능한 성숙의 감정이다. 조금 더 서둘러 쓰지 못한 시간들이 무겁게 나를 붙잡고 있다. 그 자책의 시소 반대편에, 스피노자 선생님이 앉아 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인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 욕망이라고 말하던 사람. 욕망이라는 삶의 코나투스를 들고 빙그레 웃으며. 아직 나에게 남은 욕망의 힘을 믿어도 된다고 말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