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기다림이 깊어지는 달

by 이채이

1월의 바람을 잡아둔다. 항구에 도착한 마음을 접어 봉투에 넣어둔다.

매달 특정일이 되면 기억을 소환하는 사진을 모아서 보내준다. 작년 오늘의, 재작년 오늘의 사진을 마이박스는 살뜰히 챙겨 보내주곤 한다. 그냥 넘길까 하다가 1년 전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하며 앨범을 클릭해 본다.


사진 속의 파랑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앙상해진 플라타너스 가지가 하얗게 부푼 열매를 매달고 있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은 우리네 어머니가 사는 기슭의 마을처럼 한적하고 오랜 시간이 쌓여 있었다. 몸통이 굵어진 올리브 나무는 시골 담장 안의 감나무처럼 흔하고도 정겨운 것이었다. 겨울은 젊음이 불끈하는 계절이 아닌 탓일까,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닿은 그곳이나 이곳 항구 마을이나 젊음은 귀하고 늙음은 흔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좁다란 계단을 걷다 보면, 돌로 벽을 쌓아 만든 프랑스의 마을 풍경이 다가온다. 그 배경 속에 띄엄띄엄 그림자를 드리우며 걷는다. 골목으로 사라지는 여인이 되어 걷다 보면 어느새 사진 속에 내가 나타난다. 그 안에서 풍경과 부드럽게 어우러지고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딱 맞춤한 사람이 나타난다. 진 겨자색 헤링본 롱코트를 입고 꿀빛 나는 두툼한 스카프를 두른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푸르고 맑은 날, 나의 시간은 천분의 일 초만큼 갇혀있다. 그만큼의 시간으로 기억되었다가 웹이라는 공간에 저장되고, 일 년을 기다리다 불쑥 내 앞에 전송되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찰나보다 짧은 길이만큼 나는 사진 속에 마냥 갇혀있다. 기억은 즉시 작동하지 않는다. 시간은 언제나 공간을 데리고 돌아온다.


사진 속의 나는 공간의 잔상을 간직하는 듯하다. 순간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머물렀던 공간의 감각만큼을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프렌치프라이의 고소한 냄새가 골목을 따라 흘렀고 갓 구워낸 바게트는 거칠고 부드러웠다. 바람이 불었고 플라타너스의 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공간을 기억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기억이라기보다 공간의 감각들이 한꺼번에 겹쳐진 상태에 가까웠다.


프랑스 혁명기의 사람들은 1월을 눈의 달이라고 불렀다. 지상에 눈이 내리고 땅이 얼어붙어버린 침묵의 계절이었다. 그들에게 일월은, 셔터가 오래 열려 있었으나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던 달이었다. 그 고요 속으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시간의 가장자리로 나는 걸어 들어갔다.


1월의 바람을 놓아준다. 항구에 도착했던 마음을, 봉투에서 꺼내 바람에 건넨다.

일 년 후의 오늘, 다시 도착할 마음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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