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의 거리만큼

by 이채이

가로등 아래서 사각사각 비질을 한다. 온전히 자신을 떨군 낙엽이 변명할 틈도 없이 쓸려 나가고 있었다. 환경미화원들은 새벽부터 서둘렀다. 무관심을 껴안고 있던 가을의 흔적이 차곡차곡 수거되고 있었다. 쓸고 담아 버리는 고되고 지루한 일을 지치지 않고 반복한다. 청소차의 최신 자동 청소기로도 할 수 없는 거리의 구석구석을, 빗자루가 대신한다. 어제의 거리와 오늘의 거리는 다르지 않다.


미화원들의 이마는 땀으로 송골 하다. 이마에 맺힌 땀은 아직 해가 오르지 않았다는 증거다. 사각거리던 소리는 제 소임을 다한 듯 물러난다. 곧 날이 밝아온다. 가볍게 쓸림의 흔적만 남긴 채 거리는 담담히 제 모습을 갖춘다.


보도 위의 선들은 한 사내가 반복해 쓸어낸 몸의 규칙을 기억하고 있다. 그 위를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간다. 사내의 비질은 어제의 도시를 지운다. 도시는 이렇게, 누군가의 비질 위에서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아침을 맞는다.


낮에도 간간히 낙엽을 쓸어 모으는 미화원을 본다. 그들의 손에는 하늘을 향하던 푸른 가지들이 빗자루가 되어 몸을 맞댄 채, 이제는 땅을 딛고 서있다. 비의 자루는 길게 남아, 사람의 허리가 먼저 꺾이지 않도록 버티고 있다. 나는 그 자루에 남은 감촉과 손에 전해진 온기를 생각한다.


자루는 언제나,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나는 쪽에 있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구석기 인류가 주먹도끼에 손잡이를 달기까지 수만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도구는 오래도록 세계를 향해 있었고, 자루가 붙은 후에야 비로소 사람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날카로운 것을 쥐고 사람은 늘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자루는 그 거리를 조정한다. 세계를 향하던 도구를 사람의 손바닥 쪽으로 기울였다.


정원 일을 할 때 삽으로 땅을 판다. 삽의 등날에 몸을 실어 밟으면 삽날은 부드럽게 흙을 파고든다. 자루가 부러지면 삽은 시무룩해진다.

도낏자루, 칼자루, 붓자루까지. 세상에 많은 자루가 있다. 자루는 늘 쓰임의 전면에서 일하지만, 결과의 공로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문장은 붓끝에서 태어났다고 말해지지만, 손의 떨림을 견뎌낸 붓자루는 좀처럼 호명되지 않는다.


인간 노동이 수월해지고, 힘이 일로 완결되기 위해 자루는 필요하다. 곡괭이로 땅을 파는 경작의 순간에 날렵한 쇠붙이는 사람의 기억에 선명히 남지만, 자루는 저만치 물러나 흐릿하다. 자루는 도구를 연장으로 만들고 세계를 향한 물건을 사람의 손바닥으로 기울인다.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끝까지 인간의 편에 선다.


아침에 뜨거운 시락국을 국자로 퍼 담으며 국자의 긴 자루를 생각한다. 뜨거움은 국에 남고, 손은 안전하다. 자루는 자신의 거리만큼 사람을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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