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는 중입니다

by 이채이

나는 늙음이 흔해졌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목숨을 길게 이어간다는 말, ‘장수’라는 단어에서 그 아득함에 문득 멈춰 서게 된다. 길다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수명이 눈에 띄게 늘어난 이 시대에, 모두가 바라는 건강한 삶과 품위 있는 죽음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 나는 그 질문을 자주 꺼내곤 한다.


노모가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말로 다 하지 못할 가정사로 몸과 마음이 고달프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척추는 검게 삭아 내려앉았고, 당뇨 수치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병든 짐승처럼 고통을 토해내고 있었다.


살아온 삶을 모두 합쳐보면, 부모란 젊음과 건강, 그리고 늙음을 모두 함유한 전체의 마지막에 서 있는 존재였다. 늙음은 본격화되었고 고통의 강도는 세졌지만, 나의 기억 속 어머니는 여전히 젊고 활기찼다. 침상에 웅크린 채 숨을 들썩이는 여인, 삭정이 같은 몸으로 이제는 걷는 것조차 힘겨운 병든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었다.


그 병실에서 나는 어머니의 늙음을 처음 만난 기분이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홀로 병원 신세를 지며 버텨온 세월이 그날, 일거에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메마른 팔다리와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죽음은 이미 스며든 듯 보였다. 숨을 쉴 때마다 싱그러운 삶의 향내 대신, 무언가 서서히 썩어가는 듯한 퀴퀴한 기운이 배어 나왔다. 겨울 낮을 물러나는 노을처럼 장엄하고 붉은 끝은 희미했다.


그러나 삶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인했다. 어머니는 조금씩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났다. 이제는 다시 걷고, 지팡이에 의지해 마실도 다니신다. 더 이상 얼굴의 구멍에서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죽음은 물러난 것이 아니라, 숨을 고르며 잠시 뒤로 물러선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지나온 삶의 굴곡을 나는 온전히 상상할 수 없다. 그 긴 생의 고저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기쁨 쪽을 담당했는지 아픔 쪽을 담당했는지는 이제 흐릿하다. 누군가에게 줬을 수많은 고통 앞에서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싶어진다. 내가 건넨 아픔이, 시간이 흘러 결국 되돌아 나를 아프게 하는 나이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 신음하던 어머니를 보며 맘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다. 삶을 무작정 연장하는 대신,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죽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영적 동물이라는 인간은, 자신의 죽음이 어느 지점쯤 다가왔는지 어렴풋이 안다고들 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 고요한 죽음은 숨을 몰아쉬며 온몸에서 마지막 호흡을 몰아내는 장면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적 죽음은 호흡기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형제자매들의 날 선 대화와 첨예한 이권이 개입되는 장면이 더 익숙하다. 육신에 공급하던 산소를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 죽음은 겨우 ‘허락되는’ 것이었다.


고통의 바다를 평화롭게 건넌 이는 없을 것이다. 풍랑이 거센 바다에서 잔잔한 돛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어머니의 고해는 너무 넓고 깊어 그 바닥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왔다. 나의 죽음은, 적어도 존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싶다고. 비인간적인 삶의 연장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한 채 삶을 마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 살아 있는 나의 소망이다. 나의 죽음이 결국 유기체의 해체로서 여느 짐승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해도, 인간의 죽음만큼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존엄한 죽음만큼이나, 존엄한 삶의 가치는 더 크다는 것을.

죽음과 삶은 결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살아 있기에 죽음은 의미를 얻고, 그렇기에 살아 있음은 끝에 이르기까지 지켜져야 할 가치가 된다. 죽음을 논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남은 시간의 양보다 하루의 밀도와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삶은 ‘깃털처럼 많은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하루를 산다는 것이 하루를 죽어가는 것이라는 차가운 산술 앞에서, 오늘 다시 나를 돌아본다. 어머니의 늙음은 내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겁주지 않는다. 다만 삶을 끝까지 존엄하게 건너야 한다는 감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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