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뒤에 얻는 것

by 이채이

양산으로 이사를 하고 한동안은 정든 장소가 멀어져 낯설고 서먹했다. 맘 편히 갈 수 있는 카페나 미용실, 믿고 먹을 수 있는 동네 맛집은 검색 몇 번으로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소는 서류에 사인 한 번으로 옮겨지지만, 마음은 늘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이사란 그렇게, 몸이 먼저 도착하고, 늦게 체감하는 마음이 길을 잃는 사건임을 알게 된다.


친애하는 관계는 모두 한때 서로를 시험했다고 한다. 서로의 마음이 확신이 되기까지는, 조심스럽게 찔러보고 새롭게 다지는 애씀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잃어서 아쉽다고 느낀 것은 단골집 몇 곳이 아니었다.


살던 곳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하면 가장 먼저 막막한 것이, 머리를 만져주는 미용실이 없다는 사실이다. 얼굴을 트고, 나의 취향과 스타일을 기억하고 커트를 해 주는 사람, 머릿결과 염색 주기를 알아서 챙겨주는 이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곤혹스럽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을 만큼 미용실은 넘쳐나지만, 마음 편히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다시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머리를 한다는 것은 단지 스타일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 나를 기억해 주는 손길에 몸을 맡기는 일이었음을 이사 후에야 깨닫는다. 그래서 낯선 의자에 앉을 때마다 머리뿐 아니라 마음까지 어정쩡 해진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장소를 옮기는 일보다, 사람을 상실하는 아픔에 더 가깝다. 예전에 살던 곳에 황량한 정원을 가진 카페가 있었다. 휑한 마당에서 차를 마실 때면, 나는 늘 그곳에 피어날 꽃들을 상상하곤 했다.

카페의 주인장과 나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고, 그 상상은 조금씩 현실이 되었다. 삭막하던 마당은 흙을 만지고 놀 수 있는 나의 정원이 되었고, 우리는 함께 사계를 지켜보는 사람이 되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 마가렛을 심고, 꽃범의 꼬리를 뿌리째 캐어다 옮겼다. 친구의 집에서 탐스럽게 자라던 아이리스를 데려오기도 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노란 목향장미를 심고, 가장자리에 핑크빛 안젤라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겪은 잦은 우울에 대해, 그가 그림과 정원 가꾸기를 통해 고통의 시간을 건너갔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이 하나의 은유가 아니라, 삶을 견디는 치유의 방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꽃이 피어나는 날이면, 꽃들은 말없이 하루의 호흡을 이어 나를 살게 해 주었다. 그 곁에 머무는 동안, 두통은 물러났고 우울은 앉을자리를 잃었다.


무엇보다 그 정원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가꾼 자리였기에 떠난 뒤에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다듬고 아끼던 정원이 있는 카페를 두고 먼 곳에 산다는 것은, 마치 지구를 떠난 우주 미아가 된 듯했다. 이사는 내가 사랑하던 꽃들과, 그 아름다움을 함께 바라보며 웃던 사람과의 이별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내가 관계 속에 머물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착과 부유를 반복하는 삶은 우리를 종종 마모시킨다.

곁에 있을 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시간들이, 상실 뒤에야 무게를 얻는다.

정착이란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러 번 다시 불려 나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떠난 뒤에야 나는 알게 된다. 그곳의 인연들이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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