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심히 듣는다.
나의 친구들이 빗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밤하늘의 별을 대화 속으로 끌어오는 것을.
비에 대해 말할 때, 나는 누군가가 이름 붙인 하늘의 비와 별을 떠올렸다.
우리가 '비'하고 발음할 때, 뺨을 타고 내리는 한 줄기 [이] 모음이 느껴진다.
'비'라는 글자를 살짝 기울여 보면 비스듬히 내리치는 빗방울이 몸에 튀는 것 같다.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적시는 '비'라는 글자는 '비'가 아니면 안 될 듯싶다.
비를 '버'나 '바'라고 불렀더라면 이미지는 뭉개지고, 몸에 닿는 언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별'은 어떤가. 별이라는 글자는 초중종성이 오밀조밀하고 꽉 차서 뭉쳐져 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반드시 거기 떠 있어야 하는 존재로서, 별은 빛난다.
별은 별이라고 불릴 때 비로소 반짝인다. 별이 자신을 닮은 이름을 가져서 다행처럼 여겨진다.
하늘의 속박을 끊고 땅으로 내려올 때라야 비는 비가 되고, 우주의 빈 공간을 지킬 때 별은 별이 된다.
이 대체 불가한 단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친구들이 있어서, 미소 짓게 된다.
친구를 말할 때 [칭구]라고 발음하면,
왠지 맞잡은 두 손을 칭칭 감아 돈독하게 해주는 것 같다.
비와 별이 제 이름에 맞게 존재하듯, 친구라는 말도 그 이름 덕분에 오래간다.
나는 친구들처럼 모여 떠드는 새들이 좋다.
새들의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자연의 음악이다.
자모의 경계가 흐릿해 글자로 옮기기 어렵지만, 귀를 기울이면 저마다의 멜로디가 들린다.
참새는 늘 무리 지어 다닌다. 관목이나 풀숲의 잔가지에 앉아 있다가도 금세 자기 위치를 드러내는데, 수다를 참지 못하는 탓이다. 새들의 지저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느새 자동 통역으로 마음의 언어가 재생된다.
찔레 열매를 쪼아 먹는 지빠귀도, 쥐똥나무 가지를 흔드는 뱁새도, 까악 울며 지나가는 까마귀조차도,
비가 오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밤이 되면 별을 본다. 나도 그러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나는 묘한 기쁨을 느낀다.
사람마다 서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누구나 자기 이름이 가닿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사실을, 비와 별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