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by 이채이

막국수에 관한 글을 읽다가 호로록 입속으로 빨려드는 면발 같은, 미꾸라지가 생각났습니다.

미꾸라지는 물속의 토룡이라고 불린 것도 같고, 도망칠 준비가 된 얼굴로 논바닥을 기어 다녔기에 약삭빠른 사람의 애칭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여름날의 몸보신으로 추어탕을 끓였습니다. 장어 같은 물고기는 비싸고 귀해서 먹기 힘들었을 테고 논바닥의 미꾸라지는 그런대로 흔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추어탕의 추(鰍))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추어의 ‘추(鰍)’는 그 자체로 미꾸라지를 뜻합니다. 여기에 다시 물고기 어(魚)가 붙어 추어가 됩니다. 마치 스스로가 물고기임을 한 번 더 확인받고 싶은 것처럼요.


물고기라 하면 붕어나 피라미 같은 단정한 형체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미꾸라지에는 굳이 ‘물고기’를 한 번 더 붙였습니다. 미꾸라지는 스스로를 확인받듯, 이름에 물고기임을 한 번 더 강조해야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정체성이 흔들릴수록 말은 많아지고, 글에는 힘이 들어갑니다.

나 역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 화려한 문장과 수식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피라미처럼 가만 흘려보내도 될 것을, 나는 미꾸라지처럼 바닥을 헤집으며 구정물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글은 탁했고, 오래 두어야만 가라앉는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국물도 글처럼, 맑게 끓여도 진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가게가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추어탕 하나만은 정말 정성스럽게 내는 집이 있지요. 그곳의 추어탕이 특별한 이유는 한 끼 밥에서 느껴지는 넉넉한 인심입니다. 뚝배기 추어탕에 추어와 얼갈이배추를 잔뜩 넣고 끓여줍니다. 그리고 따끈한 돌솥밥이 함께 나옵니다. 게장과 고등어조림, 젓갈과 야채가 곁들여집니다. 제 작년에는 구천 원이었는데, 지금은 만 천 원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추어탕의 구성이 더 알차졌습니다. 저는 식당에 가면 다 먹지 못하고 나옵니다.


이곳에서 추어탕을 먹을 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기억이 걸려 나옵니다. 만약 손가락 같은 모양 그대로 밥상 위에 올려졌다면, 나는 한 숟가락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살만 발라 형체 없이 건더기에 섞인 국은 그냥 먹기에는 비위가 상했지만, 혀끝을 찌르는 재피의 향이 더해지자 비린내는 사라지고 비로소 맛이 살아났습니다. 느끼하고 덤덤하고 비린 것에 더해진 약간의 향신료랄까요. 그 덕에 난 조금씩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추어탕을 끓이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그 맛을 내어주는 식당을 찾아가 소중한 기억을 한 그릇씩 떠먹을 뿐입니다. 추어탕을 먹을 때면 어린 시절이 따라 나옵니다. 추어탕은 늘 오래된 기억을 데리고 옵니다.

한 숟가락을 뜰 때마다, 잊고 있던 시간이 함께 입안으로 흘러듭니다. 그래서 나는 추어탕을 추억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추억은 지나간 시간을 추격해 가며 다시 떠올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추어탕을 먹으며 떠올릴 추억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사진은 '마음속 멜로디'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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