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마치고 썰렁한 자취방에 돌아올 때나 숨 가쁜 길을 오를 때, 주머니엔 동전 몇 개밖에 없을 때도 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습니다. 킬리만자로에 가본 적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나는 표범이 되고 싶었습니다.
산정에 올라 굶주린 채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 말입니다.
눈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그 표범의 고독을 가수는 오래오래, 시처럼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를 한 번 듣고 나면 온종일 멜로디가 나를 따라다니고, 가수의 음색에 나의 소리를 얹어서 목청껏 부르곤 합니다.
내 삶이 힘들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질 때마다 노래는 대답해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라고 나를 대변해 주었습니다.
이 노래의 모든 부분을 좋아합니다. 중간엔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나는 한 번도 귀뚜라미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귀뚜라미 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것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라일락을 본 적이 없었지만, 라일락을 이름으로부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곡에 귀뚜라미와 라일락이 없었다면, 나의 정서는 딱 거기에 멈춰 서있을 것만 같습니다. 킬리만자로나 표범 같은 멀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 옆에, 작은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이 외롭다고 했습니다. 운명을 걸기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라고 자문자답했습니다.
운명이나 사랑 같은 추상어보다 모든 것을 건다는 결의 앞에서 무릎이 꿇어졌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노래는 내가 가진 '나'를 값 쳐주었습니다. 나에겐 내가 전부인 '나'가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간은 곡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나' 한 글자로 여백을 메우는 곳이지요.
'나 나나 나나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나 나 나 나 나 나나~'
나는 이 곡이 '나'의 여백으로 끝나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곡을 따라 부르다 보면 머리까지 공명하는 여백 부분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잡스러운 찌꺼기를 다 쓸어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겨울이 오면 눈 덮인 킬리만자로에 가, 이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아직도 나에겐
내가 전부인 나를 데리고서 말입니다.
*사진은 '토끼의 달빛 산책'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