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by 이채이

잘 말려둔 에나멜 수국은 갓 꺼낸 튀김처럼 바삭합니다. 이 꽃송이를 와작 하고 씹을 수 있다면 하고 상상해 봅니다. 핑크빛 탓일 테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마른 수국을 한입 떼어 맛보면 곁에 있는 사람은 왠지 따뜻하고 부드러운 밀크커피를 내올 것 같습니다. 함께 곁들이면 참 좋겠다면서 말이지요. 커피와 크루아상이 고소하게 어울리듯, 이제 커피와 말린 수국도 은근한 친밀감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여름이면 거대한 머리통의 에나멜 수국을 싹둑 베어 줄줄이 말려두곤 했습니다. 닥쳐올 겨울을 미리 아는 생명들처럼,

꽃이 귀해질 계절을 염려해 꽃을 매다는 타샤처럼요.


농사에도 풍작과 흉작이 있듯 꽃들에게도 그렇습니다. 수국에게 작년은 대기근 같았습니다. 날이 가물어 물이 넉넉지 않았고, 꽃송이는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오그라들었습니다. 여름인데도 가지는 마른 기색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키를 넘길 만큼 풍성하게 피우던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꽃잎에는 주근깨가 더께더께 앉았고, 잎은 거무스레하게 화상을 입었습니다.


나는 이내 춘궁기를 걱정하는 가난한 자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대신 작년은 이팝나무가 풍년이었습니다. 쌀농사가 풍작이면 농부의 마음이 푸근해지듯이 이팝꽃이 소복소복 피어나면 진짜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갓 지은 쌀밥을 고봉으로 퍼서 나의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어 집니다. 꽃밥을 한 그릇 지어 드리면 나는 얼마나 행복해질까요. 꽃밥이라는 낭만적인 단어 앞에서 인상과 관념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가 경험한 쌀밥과 꽃에 대한 인상이 꽃밥으로 엮어집니다. 꽃밥은 경험될 수 없는 것이지만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날개와 뿔을 본 사람이 날개 달린 페가수스를 상상하여 관념을 만들듯이 말입니다.


결국 내가 만든 모든 것은, 내가 겪어본 것들에서 조금씩 빌려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꽃밥을 지으며 함박웃음을 지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당신을 경험하고 함께 한 시간이 만들어낸 합작품입니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 만든 관념의 세계는 말린 꽃 한 송이를 가장 바삭한 디저트를 만들게도 하고, 따끈한 꽃밥을 짓게도 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나는 무엇일까요. 당신의 마음에 새겨진 나의 인상은 차가운 것인지, 뜨거운 것인지.

손을 내밀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스쳐 지나가고 싶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나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이상하리만치 자유롭지 못합니다.


커피를 마시다 문득 말린 수국이 떠오르듯, 당신의 삶 한켠에 내가 그런 기억이었으면 합니다. 사라지진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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