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없는 것들에 대하여

by 이채이


나는 가만 생각해봅니다.

내가 값없이 받아온 많은 것들을.

‘많다’라는 말이 담아내지 못할 만큼 넘치게 받아온 것들 말입니다.

햇빛과 공기와 바람,

아무 대가 없이 나를 키운 토양,

그리고 오로지 피를 내어주었다는 이유로 무한한 사랑을 건네던 어머니까지.

나는 이미 넘치도록 많은 것을 값없이 받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 겨울, 양지바른 곳에 작은 바위가 있었습니다.

둥글반질한 바위는 햇볕을 머금고 따뜻했습니다.

뺨을 대면 기분 좋은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어느 날 바위를 흔들어보았고, 놀랍게도 그것은 움직였습니다.

바위를 밀어내자 그 아래 작은 구멍 속에서 개미들이 하얀 알을 기르고 있었고, 주변에는 은빛 쑥이 담장을 두르듯 자라고 있었습니다.

차갑기만 할 것이라 여겼던 돌덩이는 열기를 품어 생명을 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바위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그 마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돌의 온기가 먼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루 밑은 나의 비밀 공간이었습니다.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얽힌 그곳에서 나는 거미를 관찰하곤 했습니다.

거미는 정교한 규칙으로 움직이며 줄을 고치고, 안전한 길 위를 걸었습니다.

하루살이를 감싸 고치처럼 만드는 모습은 삶을 지켜내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거미줄 한켠에 작은 주머니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떼어냈습니다.

찢어지는 순간, 수백 마리의 아기 거미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나는 얼어붙었습니다.

누군가의 전부를 망가뜨렸다는 감각이 밀려왔습니다.

그날 이후 다시는 마루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주머니 하나에 누군가의 전부가 담겨 있음을,

그때 비로소 삶은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돌 하나에 기대어 사는 생명이 있고,

작은 주머니 하나에 어미의 전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햇볕과 바람과 거미와 흙은

나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살려온 근원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흐르는 정서 대부분은 그 시절에 만들어졌습니다.


마루 밑에서 거미줄을 헤치고 나오던 순간,

겨울 햇살이 아직도 따갑게 남아 있습니다.

나는 값없는 것들로 삶의 무게를 가늠하며 삽니다.


* 사진은 '별꽃'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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