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순간

by 이채이

사람은 맛보다 순간을 기억한다.
아무리 훌륭한 음식을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맛있었다’는 말만 남고, 구체적인 기억은 희미해진다. 여행지에서 지역 이름과 맛집을 검색하면 끝없이 쏟아지는 추천 목록을 따라가지만, 정작 무엇을 먹었는지는 금세 잊는다.


그날도 음식은 평균 이상이었다.
잘 삶아진 꼬막을 집어 머위장아찌와 함께 먹었지만, 식당의 이름도 맛도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괜찮았는데,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반면 어떤 날의 밥상은 아직도 또렷하다.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밥을 씹던 날이 있었다.
눈물이 흘렀던 것 같고,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입술에 고이던 짭짤한 감촉이 아직 남아 있다. 반찬도 없던 밥이 입 안에 오래 머물렀고, 목으로 넘어가던 순간까지 선명하다.
그날은 내 삶이 다른 방향으로 접히던 길목이었다.


자동차가 인터체인지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속도를 늦춘다. 빠르게 스쳐 가던 풍경이 감속과 함께 또렷해진다. 기억도 그렇다. 삶이 속도를 늦추는 순간, 의식은 풍경을 붙잡아 오래 저장한다. 굴곡진 길을 지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듯, 인생 역시 어떤 순간을 경계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이는 밥을 먹지 못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그 시간은 배고픔조차 잊게 할 만큼 느리게 흘렀다.
우리의 뇌는 이런 순간을 별도의 공간에 보관하는 듯하다. 마치 가을밤을 냉장실에 저장하듯, 어떤 기억은 온전히 남아 있다가 어느 날 움이 트듯 되살아난다.


그러나 이제는 감속의 순간만이 기억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정속으로 흐르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은 마음에 새겨진다.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나는 더 오래 음미한다. 언젠가 그를 떠올리면 함께 나누던 풍경과 식탁과 웃음이 줄줄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결국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던 순간의 사람과 마음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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