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줄임표의 시간

by 이채이

집 나간 경이는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


복숭아를 사러 길가의 노점에 갔을 때가 8월의 끝 무렵이었다. 농사를 어찌나 잘 지었던지 알이 굵은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며 '달다'를 연발했었다.


아버지와 대거리를 하다 경찰이 출동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욕지기가 담을 넘어 마을을 쩌렁하게 울렸다고 했다. 옆집 사는 어머니는 도통 못 들었노라 했다. 그밤에 나간 경이는 반년 동안 집 밖을 떠돌고 있었다.


"복숭아 농사 지을 때면 들어올거다."

어머니의 말씀은 딱 그 한마디였다.


나이 들면서 나는 어머니의 마음 속에 수많은 말줄임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남매를 기르며 잔소리를 삼키고, 혼낼 법한 순간에도 마침표를 찍으셨던 까닭이 세상의 잡말이 아이에게 닿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었음을. 그것이 자식을 지키는 방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깨닫는 순간이 올 때까지, 어머니는 오십 년을 기다려주셨다.

나는 군말 없이 기다려주며 세월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울화가 치밀 때마다 말줄임표를 남기던 어머니처럼 나는 책을 펴고 하염없이 필사를 했다. 책 한 권을 다 마칠 즈음이면 마음은 순화되어 작품 속으로 희석되었다.


오늘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었다.

통깨를 흩뿌려낸 고들빼기김치와 조기를 넣어 자작하게 끓여낸 무선, 푸릇한 시금치나물을 먹었다. 풋 팥을 넣은 밥을 고봉으로 퍼주셨다.


"어머니, 시금치가 달아요. 역시 어머니 시금치는 다른데요."

남편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무엇에건 너스레를 떨지 않는 사람의 말이었으니까.


누구에게나 진심을 전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평생을 기다려 주는 사람도, 필사로 마음을 삭이며 말을 둥글리는 사람도 모두 같은 마음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팥밥은 씹을수록 찰지고 달았다.


입춘이 다가온다.

골목 끝에서 봄바람이 먼저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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