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똥

by 이채이

국물 내는 멸치를 한 박스 샀다. 검지만 한 길이의 멸치 떼가 상자 안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등을 누르고 머리를 떼면, 내장이 쑤욱 뽑혀 나온다.

바다를 헤엄치고 다녔을 은빛 무리의 내장은 오그라들어서 똥으로 취급받는다.


멸치똥... 그래서일까 멸치를 먹을 때 똥째 먹고 싶지 않은 건.

나는 똥을 떼기 어려운 작은 것 대신, 큰 멸치의 내장을 발라내고 쓴다.


멸치는 잡는 즉시 배 위에서 쩌버린다. 싱싱한 채로 고온에서 쪄야 비늘이 벗겨지지 않고 색도 곱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사이, 멸치들의 생은 순간을 남기고 굳는다.

멸치를 손질하다 보면 그들의 최후를 상상할 수 있다.


멸치는 온순해 보인다. 죽는 순간의 공포조차 건조하게 남아있다.

그들에게 반항의 흔적은 없다. 입은 다물어 침묵하지만 멸치의 눈알은 허옇게 떴다.

멸치는 무리 지어 움직이는 까닭에 군무를 추는 것에 익숙하다. 그물에 걸리는 순간이나 찜기에 담기는 때에도 작은 생명의 최후는 두렵고도 경쾌했다. 쫓기는 삶의 몸놀림은 등이 휜 채 남아있었다.


멸치 사이에 털실 같은 갈치가 섞여 있을 때가 있다. 실갈치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죽었다.

그물에 걸린 순간조차도 무더기로 쌓인 먹이 앞에서 이빨을 드러낸 건 본능이 아니었을까.

가시 많은 입을 쩍 벌린 그 모습이 기괴하게 말라있다.


날 선 이빨을 드러낸 실갈치를 보며,

욕심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도심의 사거리에 신호등이 바뀌면,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욕망에 휩싸인 사람들조차 인간이 만들어내는 물결 앞에서 잠시 멈칫할 것이다.

우리의 군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멸치 똥을 떼어내며, 펄떡이는 생명 같은 내장이 똥으로 취급되는 건 죽음 이후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 생각의 와글거림이 내가 사라진 뒤에도 헛되이 버려지지 않기를.

한 줄 글에 정성을 다하는 이유다.

*사진은 ‘a890427’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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