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동태 배를 가르고 있었다.
궤짝에 오래 담겨있었는지 울퉁불퉁한 모양 그대로, 얼어있었다. 눈꺼풀이 없는 동태는 눈을 감지 못한 채 시선을 피하는 듯했다. 뱃속에는 작은 알주머니를 품고 있었다. 토막을 치고 청주를 뿌려 두었다.
나는 동태탕을 끓일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큰하게 끓일까, 맑게 끓일까 망설였다.
먹어본 적은 있지만 요리는 자신 없는 종목이다.
고춧가루를 넣은 매콤한 맛도 좋지만, 가끔 뽀얀 국물이 우러난 할머니의 동태탕이 생각난다.
동태를 넣어 끓이는 동안 무를 썬다. 할머니는 무를 일정하게 나박나박 썰지 않고, 엇비슷하게 삐져서 넣었다.
무 조각마다 두께가 달라, 칼질한 손의 의도가 드러난다.
무를 넣어 끓이면 국물이 잘 스며든 얇은 쪽 무와 달달한 맛이 나는 두툼한 곳이 어우러져 맛의 층위를 만든다. 그런 무를 먹을 때면, 한 문장에 다양한 맛이 담긴 글을 읽는 기분이 든다.
물을 찰랑하게 잡고 익히다가 마늘을 넣어 한 번 더 끓여낸다. 거품이 오르면 걷어내고, 오로지 소금으로 간한다.
맑은 국물에서 동태육의 감칠맛이 천천히 올라온다. 별도의 간은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욕심을 내 젓갈과 마늘을 많이 넣었다. 흰 국물 위로 잔거품이 모여들고, 맑던 색이 흐려졌다. 숟가락을 넣자 향이 먼저 탁하게 퍼졌다.
욕심을 넣자 국물은 흐려졌다.
자극적인 맛은 혀를 먼저 홀리고, 양념이 과잉된 음식은 재료의 맛을 가린다.
글도 그렇다.
미사여구가 많은 글은 화려하고 멋져 보였다. 나 또한 그런 글을 쓰고 싶어 수없이 덧칠했다.
형용사를 얹고 또 얹다 보면, 문장은 떡진 화장을 한 얼굴처럼 숨이 막힌다.
고칠수록 글은 요란해지고, 맛은 흩어졌다.
맑은 동태탕을 떠 한 숟갈 맛본다. 슴슴하고 깨끗한데 자꾸 끌어당기는 맛이다.
마지막에 넣은 대파의 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최소한의 양념으로 맛을 내듯, 절제된 말이 글맛을 끌어올린다.
동태탕을 끓이며 나의 마음도 함께 끓는다.
말을 덜어낼수록 글이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