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 것들 앞에서

by 이채이

감자에 싹이 났다. 그 싹에는 독이 있다.


봄이 올 무렵이면 어머니는 싹 난 감자를 잘라 재를 뿌려두었다. 상처에 가루약을 뿌리듯.

감자를 밭에 심고 남은 감자로 조림을 해주셨다. 그 맛이 오래 남았다.

수분이 빠지고 쪼글 해진 감자는 단단하고 진한 맛이 났다. 감자의 싹을 두껍게 깎아낸 간장조림은 입맛 없는 봄날에 먹는 별미였다.


여름날 된장독을 열어보면 구더기 같은 애벌레가 있었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쳤다. 나는 된장을 버리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그땐 이해되지 않았다.

된장독 안 곰팡이가 생긴 부분을 떠내고 벌레를 퍼서 버리고 나면, 노오란 된장이 남았다. 해바라기 꽃잎 같았다.


오늘 싹 난 감자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독을 도려내고 우리를 먹이던 손을.

어머니에게 먹을 것은 버릴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려야 할 것이었다.


내게도 쉽게 버려지는 것이 있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난 농산물을 버리기가 힘들다.

쌀 한 되를 내게 보내기까지, 젖은 발로 논을 휘저어 가며 잡초를 뽑았을 노고를 잊을 수 없다.

쌀이 오래되어 묵으면 방앗간에서 떡국을 뽑는다. 떡국은 겨우내 자식들의 간식이 되고 밥이 된다.

떡국에 곰팡이가 피면 뜨거운 물에 담가서 깨끗이 씻고 곰팡이를 벗겨낸다. 그리곤 볕에 오래 말린다.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지면 장에 나가 뻥튀기를 만들어 오신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 모든 일이 구차하고 불결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것이 힘든 날들을 버텨온 방식이라 생각한다. 어머니가 삶을 대하던 방식을 난 그대로 물려받았나 보다.


막막한 날이면 어머니를 떠올린다.

버려질 것들 앞에서 나는 살리는 법을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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