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여야 할 이유

by 이채이

꼭 너여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어느 날, 그 시간에, 그곳에 태어났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고

나는 가끔 내던져짐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있다면 우리를 하나하나 골라 자리에 앉혔을까.

아니면 아이가 던진 주사위처럼 이리저리 굴러가는 삶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을까.

어디서 멈출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웃고 있었을까.


새로운 세상에 오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문을 지난다.

그 문을 나서면 같은 곳일 줄 알았는데, 풍경은 서로 달랐다.

검색창을 열면 얼굴들이 나타난다.

배고픈 아이의 눈, 생리대 한 장이 아쉬운 여고생의 하루,

연탄으로 겨울을 버틴다는 골목 끝의 삶.


나는 한참을 바라본다. 그리곤 간신히 숨을 삼킨다.

숨이 천천히 내려앉고, 마음이 멈춘다.

손이 머뭇거린다.


후원 버튼은 착한 마음보다 두려움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 자리가 내 자리였을 수도 있었다는 마음.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


우리는 모두 신의 문을 통해 왔지만

때론 춥고 때론 따뜻하다.


그 온도 차이를 삶의 결과라 부르곤 하지만

아직 그 말이 잘 믿기지 않는다.


꼭 너여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너였고,

그렇게 우리는

내던져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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