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편지

by 이채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시인은 고양이의 가르릉 소리가 잠을 부른다 했습니다.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의 근황이 전부인 편지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적었다는 것을 압니다.


고양이에게 옷을 입혀줄까 한다는 날이 추워지고 있으니 목도리라도 꼭 두르라는 말로 들립니다. 나는 그의 문법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그의 말은 이미 나의 문법책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가장자리가 닳도록 읽었던 그의 시집을 꺼내 보았습니다. 봄의 시어가 꼼지락대며 마당가에 내려앉습니다. 새순, 꽃봉오리, 물오른 같은 보통의 말이었습니다. 도르륵 구르는 시의 말들을 그대로 둡니다. 단어가 자리를 찾는 동안 '물오른'이 땅에 스며 찔레의 가지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지켜봅니다.


봄이 온다는 것은 이름을 써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내 텅 빈 줄기에 신이 조제한 먹물로 살구꽃이라 적어줍니다. 솜털처럼 부풀어 오른 가지에 목련이라는 이름을 얹어줍니다.

이름은 인간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짧은 자서전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자연의 자서전도 어쩌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부를 때 무언가의 첫 페이지가 시작됩니다. 봄은 늘 그렇듯 속도를 앞지르지 않고 정속으로 다가옵니다.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짓는 봄은 누군가의 삶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되기도 합니다.


돋아나는 새싹 더미에서 잡풀의 이름을 찾아 적습니다. 이제 시인에게 답장을 쓰려합니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보내는 봄의 편지임을 대번 알아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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