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아름다움을 좇아 시작한 일들이 나를 이렇게 외딴곳까지 데려왔다. 남겨진 말들은 껍데기뿐이었고, 나는 그 위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나는 자주 허탕 치며 주저앉았다.
까만색 구슬을 손에 쥐어주던 나의 아버지는 말을 남겼다.
세상에 ‘두엇쯤’ 당신을 남겨두고 떠나겠다고.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글로, 헛헛함을 덜어주겠노라고.
막막한 순간이면 오래된 말들을 꺼내온다. 혹시 당신이 알려주고자 한 것이 이것이었을까 생각하며.
과수원 얕은 곳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거짓을 말하던 동화 속 아버지. 게으른 자식들에게 부지런함을 심어주려 했던 그 마음이 떠오른다.
보물은 묻혀 있지 않았다. 생의 곳곳을 파헤치며 매번 실패했다 여겼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땅을 뒤집은 자리마다, 그날의 하루가 성실히 들어있었음을.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이 먼저 젖었다.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다가, 괜히 고개를 숙였다.
대숲에 바람이 들면 온통 비어 있다는 게 이상하게 부러웠다.
가득 선 줄기들 사이로 서늘함이 비껴 흐르고 있었다.
대숲은 잠언으로 가득하다.
대숲 한 그루를 톱질해서, 바구니를 엮는 여인을 알고 있다. 그녀의 손놀림은 규칙과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공에 탑을 쌓듯 가볍게, 그러나 정확하게 층을 잇는다.
나는 그녀가 엮어낸 빈 것의 충만함을 좋아한다. 그녀의 채반을 들고 돌아와 포도를 씻어 담고, 흙을 털어낸 냉이를 한 소쿠리 채운다. 빈 것이 조금씩 채워질 때마다, 당신이 약속한 ‘두엇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바구니를 들고 돌아온다. 당신이 남겨둔 빈자리에 계절이 드나든다.
편지는 아직 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