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하고 있었다

by 이채이

물이 오르고 있어.

겨울 끝자락, 잔가지가 먼저 붉어진다.

아, 봄이 몸을 뒤척이는 모양이다.

복숭아 가지는 붉고, 산수유 눈은 노랗지.


나무는 겨우내 색의 이름을 외워 둔 채 꽃이 앉을자리를 미리 짚어 본다.

한 방울의 물이 물관을 따라 오르며 꽃을 물들이듯, 아침의 울컥한 감정도 그날의 글색을 바꿔버리지.


가로수 끝가지가 흔들릴 때 봄이 이미 오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사람도 그래. 뺨이 붉어지거나 낯빛이 희어질 때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걸 느끼잖아.

말은 아직 없는데 어딘가 먼저 출렁이는 게 있어.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한 발 가까워지고 있지.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나무에 심장이 있다면 아마 발끝쯤 아닐까 하고.

우수의 비를 머금고 보이지 않는 데서 조용히 뛰고 있을 것 같아.


봄이 오려니 매화가 그립다.

통도사의 홍매는 이미 해탈하여 사그라진다 하고, 화엄사 매화는 부풀기만 할 뿐 말없이 수행 중이래.

겨울이 다 녹지 않은 건 차례를 기다리는 거고, 노란 유채가 피는 건 봄을 부채질하려는 걸 거야.


마당을 쓸다 문득 올려다본 새벽에 두두둑 그렇게 꽃이 피어날 거야. 그러면 그 향을 못 견디겠는 햇님이 슬며시 가지 위에 앉을 테고, 잠에서 깬 벌들이 꽃봉오리를 두드리겠지.

그러면 그때야 진짜 봄이 오는 거지.

물오른 봄은 결국 터지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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