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먼저 짧아지고 있다. 밤은 노곤한 잠을 태웠다 새벽에 내려놓는다.
나는 깊이 잠들지 못한 채, 나의 하루를 살아갈 뿐인데 그 속에 너의 하루도 녹아있다.
이 지구별 곳곳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을 숙명인 양 함께 겪는다. 빛이 어둠으로 스며들듯.
밤에 진입하는 저녁이 늘어지고 있다. 골목 끝 담장에 붙은 담쟁이를 따라가면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진다.
이럴 땐 방향 없는 시공을 돌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낮이 길어지면 밤은 가끔 집에 가는 길을 잃곤 한다.
파란 지붕집을 지나면 양철 대문이 나오고, 목련이 고개를 내민 곳에 이른다. 목련은 나의 피곤이 쉬어도 좋다고 일러주는 이정표 같다. 골목의 지름길을 지나면 마침내 작은 창을 낸 집에 이른다. 햇살의 각도로 때로는 그림자의 길이로 계절을 가늠한다.
가로등을 따라 배치된 밤은 그림자를 타고 함께 걷곤 한다.
손바닥 창에 백열전구가 켜지면 밤이 비로소 제집에 눕는다.
당신을 따라간 당신의 밤도 나의 밤처럼 시간에 순응하며 내일로 흐르고 있다.
밤이 아직 잠들지 않는다.
창을 열어 공기를 들이고, 조절기의 온도를 조금 낮춘다.
낮의 사람들이 궁금해진 나는 손바닥 빛을 더 켠다.
영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면 세상엔 부자가 넘쳐나고 순간 가난은 사라진다.
나의 가난은 여전히 저녁 밥상 위에 놓여 있는데, 세상은 부의 하수구로 몰려든 거품처럼 부유한다.
시집을 펼치고 누군가의 젊음을 건너갔던 시간에 발을 담근다.
밤의 공기가 온순해져서 잠을 잘 자겠다. 이불을 당겨 덮어준 밤은 새벽 별 쪽으로 모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