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의 집 정원에 꽃을 심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씨 뿌려 가꾼 곳이 나의 정원이라 생각한다.
김해에 살던 어느 해, 가까운 사람의 실직으로 마음이 거칠어져 있던 때가 있었다. 개천가에 핀 흔한 금계국조차 부러웠다.
딸과 밤 산책을 다녀오다, 금계국이 한 무리 핀 하천 바윗가에 나란히 앉았다.
"딸, 여기 다 엄마 거야."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딸이 눈을 크게 떴다. "여기를 샀어?"
나는 웃었다.
"응... 엄마가 매일 와서 돌보지."
그렇게 말한 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나 방백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독백 같은 말을 입 밖에 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소유하지 못한 것들 앞에서 주눅 들던 마음이, 잠시 등을 폈다.
그 무렵, 소유하지 않아도 가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는 멀리 있는 작가님의 정원에 모종을 심으러 가려한다. 우수가 가고 경칩이 지날 날이 기다려진다.
꽃은 심는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계절을 따를 뿐이다.
꽃잎이 하나씩 열릴 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풀린다.
친구의 뜰에서 건너온 꽃뿌리가 다른 흙에 자리 잡는 것을 본다.
시간이 정원의 얼굴을 바꾼다. 무리 지어 하늘거릴 때, 세월도 그렇게 깊어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명의로 된 집에 평생을 새들어 산 노인이 있다면, 그 집은 누구의 것일까.’
집은 조금씩 닳았을 것이다. 노인의 손길처럼.
오래 살아낸 사람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나는 아직 내 땅이 없다. 그래서 울타리 밖으로 자주 나간다.
명의뿐인 세상에서 나는 자꾸 명분 너머로 걸어 나간다.
그렇게 나는 남의 정원에 나를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