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보아라.
나는 여문 글을 읽지 못한다. 배움이 짧아 한 줄 쓰는 것도 더디다. 너는 형제들 중에서도 글을 좋아하니 내 말을 귀히 여길 줄 안다.
나는 병약한 몸으로 명을 이어왔다. 사람의 명이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 저무는 해 속에는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고 뻘건 노을도 있다. 너는 나의 노을이다.
느이 아버지가 젊어 죽을 때, 제 명을 나한테 붙여주고 갔다 생각하며 살았다. 농사지어 자식들 배곯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하지감자를 캐 생갈치를 조리면 살 오른 갈치를 네 입에 넣어주는 게 좋았다. 느이 오빠는 내가 아직도 배전데기를 좋아하는 줄 알지만, 너는 늘 살을 같이 먹자 하더라.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다. 너는 영특하고 눈이 맑았다. 뒷밭 작약을 다 파내지 못한 것도, 꽃밭을 뛰어다니는 네가 보기 좋아서였다.
머리에 다라이를 이고 감을 팔러 갔다. 통학차에 과실을 실어 보내고 돌아오는 길, 안갯속에서 네가 책을 들고 소리 내어 읽고 있더라. 입 밖으로 나오는 글이 물처럼 흘렀다. 그 소리가 참 좋았다. 백 원짜리 한 장 쥐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대신 마당 가에 접시꽃을 심고, 버려진 꽃나무를 주워다 묻고 물을 주었다. 너는 철마다 꽃을 피웠다.
네가 아이를 낳으러 집에 와있을 때, 동치미를 썰어 무쳐준 것이 전부였다. 소고기라도 사다 구워 먹일 것을. 그 생각이 요새 부쩍 난다. 없는 반찬에도 밥을 잘 먹어주던 네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도 손 벌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더 크게 붙들고 있었다. 언젠가 네 등을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싶다.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많이 누리고 살아라. 뙤약볕에 밭을 매다가도, 내가 상상도 못 할 외국말을 하고 아이 손을 잡고 바람처럼 다니는 너를 떠올리면 힘이 났다. 그 힘으로 내가 여기까지 왔다. 내가 못 누린 것까지 네가 누리면 그만이다.
내가 판 우물로 네가 사는 줄 알았더니,
네 속이 깊어 그 안에 솟는 물로 오늘도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