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이 비어있던 오후

by 이채이

한겨울의 치앙마이는 생각보다 따뜻했습니다. 나는 추위를 피해 그곳으로 떠나있었습니다.

올드시티에서 날리는 밤의 풍등도 멋지지만, 그 도시의 혈관 같은 핑강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새벽의 강이 주는 평화를 그곳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해가 오르면 물안개가 하늘까지 따라 오릅니다. 그러면 멀리서 그물채를 들고 수영장의 나뭇잎을 건지는 남자의 콧노래가 강의 가장자리를 따라 서서히 퍼집니다. 손끝이 뭉툭하고 앞니가 한 개 빠진 남자는 웃을 때 입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입과 눈을 따라 자연스레 생겨난 굴곡을, 나는 차마 주름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깊게 패인 골이, 그가 살아온 시간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침이면 눈인사를 하고 잔디 정원을 쓸었습니다. 플루메리아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하와이의 여자들이 귀 뒤에 꽂는, 도자기처럼 두툼하고 좀처럼 시들지 않는 치자 같은 꽃.

가끔 욕조에 띄워 낭만을 부리기도 하는, 향 좋은 그 꽃이 플루메리아였습니다.

오후가 되면, 나무에서 떨어진 플루메리아 한 송이가 사람들의 귀에 따뜻한 겨울을 꽂아 주곤 했습니다.

살가움은 사람이 건네는 손길 같은 것이어서, 한 번 받으면 몸 안에 오래 남습니다.

나는 플루메리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서 건너오는 따뜻함은, 핑강의 카약처럼 흘러왔습니다.

나는 핑강의 시원이나 그 흐름의 끝을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카약을 타고 지나며 강가에 자리한 그들의 삶과 가끔 이곳을 찾는 나와의 어떤 인연에 대해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사원에는 그들의 신이 있고, 그들의 소망은 녹아내린 촛농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허리를 깊이 접어 제 몸보다 낮은 곳으로 마음을 내려놓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두 손을 모으던 할머니가 문득 겹쳐 보인 것은, 그들의 거친 손에 오래 밴 고단함이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를 마친 한 여자가 모았던 손을 펴고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손바닥이 희고, 깨끗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고단함은 손바닥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간 듯했습니다.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가 다시 가만히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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