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불사에서 야생 멧돼지를 보았다. 주둥이로 길을 더듬듯 두리번거리던 놈은 건들거리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절집 곁을 오래 맴돈 짐승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몇 해 전 어머니 집을 찾아왔다는 멧돼지가 문득 떠올랐다.
시골집 뒷밭에는 한때 고구마를 심었었다. 지금은 더는 심지 않는다.
고라니가 내려와 잎을 뜯어먹고, 멧돼지가 내려와 땅을 뒤져 알 고구마를 파먹기 때문이다.
멧돼지 일가가 한 번 다녀가면 밭은 금세 뒤집힌다.
아깝기도 했지만 나는 그보다 어머니가 먼저 걱정되었다.
뒷밭에서 그것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이 든 어머니는 몸을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가을 어느 아침, 현관문을 열고 토방에 내려선 어머니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했다.
마당 한가운데 고라니 한 마리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두고 간 듯, 아니 무엇이 두고 간 듯 그렇게.
뒷산 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멧돼지 한 마리가 숲으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누그러졌다.
불길하다기보다 홀로 사는 어머니 곁을 어떤 짐승이 가만히 서성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동화 같은 생각이 마음을 잠깐 흔들었다.
어머니는 그 큰 고라니를 어찌하지 못해 뒷밭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도 어딘가에서 멧돼지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고라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잡식성인 멧돼지에게 그 또한 귀한 먹이였을 것이다.
잔칫상 앞에 앉은 아이가 어른의 수저를 먼저 기다리듯,
그 짐승도 어머니의 시간을 잠시 기다려 준 것은 아니었을까.
절집에서 오래 법문을 들은 돼지를
사람들은 탁발돈(托鉢豚)이라 부른다는데,
어머니 집 근처를 맴돌던 그 멧돼지를
나는 마음속으로
'효돈(孝豚)'이라 불러 보았다.
그 뒤로는 그것이 다시 찾아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자주 못 드린 내게
그 짐승의 발자국이 자꾸 마음에 밟혔다.
미물도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건드릴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