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꿈을 오래 꾸었다.
밤은 어김없이 꿈을 만들어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깊은 잠을 자본 기억이 희미했다.
잠은 숙면과 불면으로 나뉘지 않았다.
차라리 숙몽과 불몽이라 불러야 할 만큼, 꿈은 잠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취하며 살았다. 겁이 많은 편이었다. 그때부터 쌓인 불안 때문이었는지 홀로 살 집을 선택하는 기준은 딱 하나였다. 큰 도로가에 있을 것. 혼자 긴 골목길을 걷는다면 매번 꿈은 나를 그곳에 세워둘 것 같았기에.
대학시절, 조촐한 자취방에서 유일한 사치라면 침대였을 것이다. 침대는 방바닥보다 높아서 내겐 결계의 의미가 있었다. 큰 차가 지날 때면 서향으로 난 창은 창문을 흔들었다. 잎이 무성해지는 계절이 되면 은행나무 가로수는 커텐을 치고 창을 가려 방음해 주었다. 그런 날이면 가끔 꿈 없는 잠에 들기도 했다.
잠이 들면 몸은 그대로 두고 다른 내가 어디론가 미끄러져 간다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말에 나는 동조했다.
꿈은 어디론가 다녀온 영혼이 건네는 조각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이야기 도중에 들어온 지각한 아이처럼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브레이크는 꿈속에서 꿈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꿈에는 갸우뚱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걸 알아채는 순간 나는 꿈을 조종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형체 없는 무언가에 쫓길 때 잔걸음을 버리고 ‘한 걸음에 일 킬로미터씩’이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무엇이건 금세 따돌릴 수 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가 시작한 꿈의 그림에 나도 한 줄을 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공포에서 조금 멀어졌다.
그러다 수십 개의 미끄럼틀 앞에 서 있는 아이처럼 나는 어느 꿈을 타야 할지 망설였다.
그 끝에서 당신이 나를 기다리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단 한 번만을 허용했을 뿐 꿈은 단호하게 불허했다. 나의 소망은 꿈속부터 철저히 허물어졌다.
꿈은 내가 다룰 수 있는 세계였다.
그러나 그리움은 아니었다.
나의 바람이 이토록 간절한데 당신이 찾아오지 않았을 리 없다고 믿었다.
꿈속의 나는 어디를 헤매다 오는 걸까.
어느 새벽 오래 울다 겨우 그친 채 깨어나는 날, 그 훌쩍임이 여운처럼 남아 있을 때면
나는 분명 당신을 만났던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날이면 숨 쉴 만했다.
우리 사이에는 하나의 꿈이 놓여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채 끝없이 아래로 미끄러지던 꿈.
새벽이면 나는 그 꿈의 끝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심장은 아직 꿈의 속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 끝없는 낙하가 결국 나를 살아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