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심

by 이채이

나는 자주 놓친다. 도서관의 책 반납일을 잊고 꽃의 개화를 놓친다.

마음이 쪼개져 작은 그릇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봄꽃은 피면서 진다. 따뜻한 날과 추운 날을 함께 받아내야 하는 지혜랄까.


겨우내 준비한 꽃눈이 허망하게 지는 걸 본다. 활짝 핀 꽃송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동안의 아주 잠시 동안 꽃잎은 바람의 춤을 춘다. 마치 지는 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며칠 전 한국이 WBC 8강에 올랐다. 호주를 7대 2로 이긴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난 그날의 하이라이트 경기를 보았다. 경기는 무릇 이겨야 제맛이라고들 했다. 꽃이 피어야 제멋이듯이.

8강 상대는 도미니카공화국. 오늘 그 경기는 10대 0 콜드게임으로 끝이 났다.

이변 없는 결과였다. 이른 아침부터 경기를 보던 가족들은 중간에 중계를 꺼버렸다고 했다.


봄의 정원에서는 적심을 한다. 국화를 기를 때 줄기 끝의 순을 잘라내는 일이다.

그렇게 덜어낸 국화는 가을에 더 많은 꽃을 준비한다.


잘라내는 결단은 달력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국화를 보며 해야 한다.

마음도 때로는 줄기의 순처럼 덜어내야 한다.

봄의 싹들은 작은 소리로 말한다. 한 줄기 국화도 수십 송이를 피우기 위해 무수히 잘리고 꺾인다고.


지는 날보다 이기는 날이 많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는 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깊이 생각하게 한다.

우리 선수들은 오늘의 조기 종료된 게임에서 무엇을 떠올렸을까. 게임에서 지고 난 후 가지는 마음가짐과 실행은 이후의 인생을 다르게 채색할 것이다.


언젠가 친구 집에 놀러 간 내가 물었다. 어찌 너희 집 제라늄은 늘상 꽃이 가득하냐고.

"꽃잎이 시들기 시작하면 아까워 말고 바로 잘라줘.

얼마 지나지 않아 새 꽃으로 보답할 거야.

그러면 꽃을 오래오래 볼 수 있을 거야."


아까운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잘라야 할 때 과감히 자르기를 한다.

꽃이 질 때 마음이 지는 것이 아니다.

새 꽃이 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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