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눈이 귀했다.
눈발 날리는 풍경이나 소복이 쌓인 가지를 기대했건만, 생각보다 오래 흰색을 잊었다.
이제는 해방군처럼 함성을 지르는 꽃들을 본다.
눈사태 대신 봄의 꽃사태를 본다.
나는 흰색의 '침묵'이나 '고요'라는 말에 반신반의한다.
봄의 그늘을 지날 때면 잎보다 먼저 길을 나선 하얀 것들의 미소를 본다.
한낮의 흰색은 수어(手語)를 말하는 사람들의 손처럼 분주하다.
눈이 쌓이듯 꽃이 쌓여가는 나무를 본다.
늙은 가지가 어린 꽃을 업고 서 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달래듯 천천히 흔들린다.
매화는 잠에서 깬 벌과 잘 어울린다. 꽃송이마다 수십 가닥의 실을 뽑아 노랗게 매듭 지어두었고, 벌들은 그 매듭을 풀며 집으로 돌아갈 길을 만든다.
날갯짓이 닿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웃음이 바람에 섞여 퍼진다. 흰색은 이렇게 작동한다.
무언가를 도드라지게 하고 싶을 때 우리는 배경을 둔다. 배경은 소란하지 않고, 스스로 숨소리를 낮춘다.
우리가 흰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까닭이다. 푸른 셔츠를 입을 때 흰색 면티를 받쳐 입듯이, 흰색은 언제나 다른 것을 돋보이게 한다.
흰색을 글로 은유하자면 수도자의 잠언 같다. 읽고 있으면 백지에 아침의 기도를 새기는 것 같다. 멀리 들리는 종소리도 안개처럼 퍼진다. 봄의 안개가 세상을 잠시 가두면, 꽃들은 자기 차례를 아는 듯 피어난다. 봄의 것들은 순서를 알고, 나는 그냥 웃는다.
봄은 하얗게 침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추지 못한다.
갑작스레 생겨나는 딸꾹질처럼, 이내 들키고 마는 계절.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 봄을 건넨다면, 물을 부으면 하얗게 번지는 라크 같은 독주를 권하고 싶다.
조금 취해도 괜찮다는 말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