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시가 지천입니다

by 이채이

시가 널려있다. 어머니의 집에 가면 기둥 사이에 매어둔 빨랫줄에도 시가 스며있다. 만년필이나 색 볼펜 같은 것으로 쓰이기 전에 이미 물들어 있다.


편지를 쓰곤 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나의 필터로 당신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온전한 당신이 없다. 내가 떠올린 당신만 있을 뿐이다.


'봄이 깊어 가고 있었잖아'라고 쓴다. 당신은 완연한 봄날을 떠올릴 것이다.

간질이는 바람이 가득한 날이었다. 귀 앞에 일부러 몇 가닥 빼놓곤 하던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던 그 오후.


어머니의 삶은 수선화의 뿌리처럼 실하고, 그 말은 시를 닮았다.

겨울을 밖에서 난 친구 경이는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복숭아 밭으로 가 물이 오른 가지를 차근차근 전지한다고 했다. 봄에 등을 떠밀린 듯 땅 위로 올라오는 새순처럼.

봄이 오면 돌아올 거라는 어머니의 혼잣말은 어느새 시가 되어 있었다.


가지를 다듬으면 나무는 볕을 잘 받고 꽃과 열매가 실해진다. 경이 부부는 지난가을부터 얼굴을 못 보았다.

잘려 나갈 가지를 고를 때 두 사람은 눈을 맞추지 못한다. 미래나 사랑 같은 말은 둘 사이에서 서먹하다.

경이는 가지를 치고 부인은 뒤따르며 줍는다. 가지를 줍다 말고 여자는 밭두렁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곤 했다.

바람이 불어 눈에 물기가 어렸을 뿐, 바닥에 떨어진 사생아 같은 봄을 이내 한아름 주워 안았다.


봄이 파고든다. 봄의 시가 꽃가루처럼 번진다.

흐릿해진 오후에 서 있으면 봄의 속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속을 모른 채 말없이 지나간다. 마음은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는지 모른다.


빨간색 오토바이가 마을길을 가른다.

달로 등을 단 마을 달밭거리. 아직 복사꽃 피지 않은 언덕.

번지를 잘못 찾은 우편배달부가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머리를 긁적이며 겉봉에 쓰인 주소를 여러 번 읽는다.

자신의 긁적임이 시가 되는 줄도 모르는 채

시가 된 편지의 주인을 찾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에 널린 시를 문득 읽게 되는 일이다.

푸석한 봄에 경이는 돌아오고 어머니는 꽃을 심는다.

봄에는 시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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