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고 있다는 착각

by 이채이

나는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믿었다.

천천히, 그러나 짜임새 있게 내 성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성은 한 번의 파도에 깡그리 무너지는 해변의 성이라는 것을 몰랐다.

적어도 쌓아가는 동안에는 알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네가 쌓고 있는 것은 모래 위의 성이라고.

나는 한 번쯤 손에 쥔 질감을 의심했을까. 푸석한 감촉을 알아챘을까.

아니면 바다의 냄새와 갈매기의 소리로 짐작할 수 있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을 쌓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쌓느냐가 중요했다.

어떤 길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 길인지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했다.


길찾기 게임을 떠올려보면, 복잡하게 얽힌 미로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막힘과 뚫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길 위에 서 있으면 시야는 좁아지고 선택은 논리를 잃어 쉽게 감에 기대게 된다.

그러나 추측으로는 닿지 않는 것들이 있다.


길이 여러 개라고 내 삶도 여러 개인 줄 알았다.

가보지 않은 길은 항상 더 멋질 것 같았다.

눈을 가린 채 누군가 보낸 신호를 나는 지나쳤던 걸까.

이제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광활한 사막이나 바다 한가운데에는 길이 없다.

현재를 잃어버리면, 길도 함께 사라진다.


누군가가 낸 길로만 다니던 습성은 길을 찾아내는 감각을 무디게 했다.

나는 완벽히 고립된 채, 던져져 있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면 결국 나는 더 아파진다.

오래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일, 그리고 스스로 무너뜨리고 싶었던 마음.

아마도 내 안의 가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시는 늘 밖으로만 돋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안쪽으로 나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나를 찔러 상처를 내고 곪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것이 마치 속죄인 것처럼.


모래알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두고 빛을 기다린 적이 있다.

손바닥에 내려앉은 빛은 모래를 통과해 잠깐의 반짝임을 남겼다.

난 내가 모래 한 알인 줄 알았는데

난 모래도 아닌 잠깐의 볕에 반짝이는 찰나에 불과했다.


그토록 짧고 덧없는 것이 삶이라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차분해졌다.

어딘가 본질에 접근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안을 채우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욕심과 동정을 가장한 질투 같은 마음들이.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남아 있는 것들이 조금씩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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