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문제는 단지 해소될 뿐이다.

by 이채이

박문호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세상에 흩어진 구슬들을, 본적 없는 조합으로 꿰어 선물해 주는 것 같다. 강철같은 통찰은 흔들림이 없어서 마치 ‘지식’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느낌을 준다. 그는 사유의 방법과 세상의 작동원리를 섬세하게 이해시켜준다.


우리는 무엇을 ‘문제’라고 부르며 살아왔는가? 비트겐슈타인 이전의 철학자들은 철학적·종교적 문제들을 하나의 전제처럼 받아들였다. “신은 존재하는가?”, “죽음 이후에도 삶은 이어지는가?”, “궁극의 진리는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그 정당성을 의심받지 않은 채 수천 년 동안 던져졌다. 사람들은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이 이 질문들에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도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정답을 내놓지 못했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문제 자체의 ‘정당성’을 의심했다. 과연 그 질문은 타당한가? 묻는 방식부터 잘못된 건 아닐까? 그리고 그는 핵심적인 한 문장을 툭 던졌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단지 해소될 뿐이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두 종류다. 하나는 ‘해결되는 문제’다. 수학 문제처럼 명확한 답이 있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해소되어야 하는 문제’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이쪽이다. 예를 들면 “나는 왜 사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다. 이런 문제는 누구도 유일한 정답을 제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해소형 문제’들을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바로 여기에서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은 도약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지식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너무 많은 지식은 방향을 잃게 하고, 지식 없이 주장만 앞세우면 위험해진다. 공자는 이 점을 간결하게 말했다.

“지식이 너무 많으면 어지럽고, 지식 없이 주장하면 위태롭다.”


중요한 건 ‘적정량’이다. 시대와 나이에 따라 필요한 지식은 다르다. 그러나 하나의 원칙은 분명하다. 지식은 내면화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책을 많이 읽고 머리에 가득 담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의 사고가 되지는 않는다. 수박 겉핥기처럼 지식을 대하면, 결국 수박 맛도 모른 채 어딘가로 굴러간다. 지식은 내 골수에 스며들어야 한다.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떠오르고, 말하고 행동할 때 나도 모르게 묻어나야 한다. 내가 가진 지식이 땀처럼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땀에 젖은 생각을 하라.”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온몸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정답은 없지만, 해소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바로 ‘내 골수까지 파고든 땀으로 젖은 지식’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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