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하기 싫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나이 들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독서와 운동, 토론과 사색은 각각 독립된 범주가 아니다. 이는 거대한 덩어리로 뒤엉켜 굴러갈 때라야 삶의 가치를 선명하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느끼고 있다. 독서와 운동에 대한 보통 사람의 생각도 그 가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토론과 사색이 실천의 측면으로 접어들면 외면되고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책을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보이지 않는 책장이 있다. 그 책장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지식의 저장고다. 지식은 단순히 쌓는다고 힘이 되지는 않는데, 그것이 삶의 맥락과 만나고, 경험 안에서 발효될 때 비로소 지혜가 된다.
운동은 건강한 몸을 위한 유기적 메커니즘이다. 다만 동작 하나하나를 분리해서 개념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정 운동의 강도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단박에 설명하기 어려운 고충이 있다. 그럼에도 하루 10분이라도 매일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확실한 몸의 변화를 경험한다. 탄탄해진 근육, 바른 자세,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낸 사람만이 누리는 깊은 만족감이 있다. 몸이 달라지면 마음도 따라 달라진다. 자신을 믿게 된다. 그래서 운동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토론은 생각을 꺼내는 연습이다. 단, 수준이 맞는 상대가 필요하다. 내 말에 비판적으로 귀 기울이고, 함께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생각을 꺼내고 발효시키는 과정이라 애정이 동반되어야 좋다.
그리고 토론 후에는 사색을 한다. 사색은 뒤집히고 흔들린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빚어내는 숙성실 같은 것인데, 진중한 이 시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앎은 도로 얇아지고 만다.
젊을 때 익힌 독서, 운동, 토론, 사색의 습관은 나이 들어 원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자산이 된다.
나이 듦에 대해 말하자면, 나이 든 사람들이 생물학적 젊은이들보다 더 젊은 것을 종종 본다. 더 이상 배움도 사색도 운동도 하지 않아 자신을 돌보지 않는 자의 젊음은, 곧 시들 것이다.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돋보기를 낄 나이가 되어도, 기존 이념에 갇히지 않고 사고의 유연함을 지닌 사람은, 푸른 봄날을 산다. 그는 미래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독서와 사유, 운동과 토론을 멈추지 않는 사람. 그는, 젊음의 현재 진행형이다. 나이는 숫자지만, 태도는 시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