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쉬워졌지만, 생존은 어려워졌다. 반짝 문을 열었다가 석 달도 못 버티고 닫히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 상가마다 빈 점포가 늘고, ‘임대 문의’라는 종이만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 황량하다.
누군가는 천금을 꿈꾸며, 또 누군가는 ‘월급보다 낫겠지’라는 기대감으로 가게 문을 연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않을 때가 많은데, 운 좋은 개업 초기를 지나면 손님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현실은 냉정해진다.
나는 새로 생긴 가게를 지날 때면 무심히 들여다보는 습성이 있는데, 손님이 없을 때 그 가게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게는 조용하다. 그러나 조용함에도 결이 다르다.
어떤 조용함은 무기력하게 멈춰 있는 것 같다. 가게 한쪽, 계산대에 앉은 이는 고개를 숙인 채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다 고객이 들어서면, 가게 안을 찢는 높은 음조의 '환영 인사'가 들려온다. 대개 하이톤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자극해서 편안하지 않다. 기계적인 인사는 말하는 이의 진심을 가린다. 그 친절이 연기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결제 이후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마무리 인사가 끝나면, 그는 배역을 끝낸 배우처럼 휴대폰으로 곧장 돌아간다.
그들에게 '나'는 결제가 끝나는 순간, 완료된 항목으로 처리된다. 이럴때는 뒷맛이 텁텁하다.
그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영수증처럼 취급되는 것에 서글픈 생각이 미칠때가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인간 대 인간이 만나 교류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차가운 친절'을 기억한다. '차가운 친절'은 왠지 오싹하고 스산해서, 그런 곳은 다시 가지 않게 된다.
반면, 손님이 없어도 바쁘게 움직이는 가게가 있다. 정리를 하거나, 메뉴를 연구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들의 섬세한 손놀림에는 목적이 있고, 가게 안에는 다음을 준비하는 에너지가 감돌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미묘한 활기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손님에게도 전해진다.
집 근처에 작은 파스타 가게가 있다. 애매한 시간대인 오후 4시, 가게 안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주방에선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흥얼거리는 목소리와 분주한 손놀림이 감지됐다. 주인은 직접 감자뇨끼를 만들고 있었다. 뇨끼를 직접 만드는 가게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조용한 집중, 흐트러지지 않은 손놀림. 그 손끝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갈구하는 청년들의 야무진 의지가 응축되어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고등어 파스타’.
바싹 구운 고등어 반 마리가 통째로 올라가 있었고, 간장과 오일을 베이스로 향신 야채와 곁들여 먹는 독특한 파스타였다. 기발한 맛, 감칠맛, 실험정신. 그는 우리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며,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식사 내내 그는 한 번도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스탠드 메뉴판엔 ‘이달의 신메뉴’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이 가게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고민하고, 시도하고, 내공을 쌓으면서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 그의 손길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아, 이 사람은 진짜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그들에게는 ‘다음’이 있었다. 다음 손님, 다음 메뉴, 다음 계절의 준비. 나는 이런 가게를 응원하게 된다. 손님이 없을 때도 무언가에 몰두하는 이들을 보면, 그 가게엔 시간과 경험이 쌓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 경험과 시간이 언젠가는 손님으로, 단골로, 이야기로 돌아올 거라고 믿게 된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음식 맛이 일정 수준은 된다. 맛은 평준화되었지만, 주인의 태도만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장사는 결국 태도고, 사람의 온기를 다루는 일이다. 음식은 입에 남지만, 태도는 마음에 남는다. 나는 그런 마음이 있는 가게에 정이 간다. '오늘의 손님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내일의 생존을 결정짓는다'라는 이런 꼰대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길을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가게들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 가게엔 ‘다음’이 있는가? 그 주인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가? 나는 그런 곳에 머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