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새겨진 주름이 당신이 쌓아온 지혜의 퇴적층이라면, 나의 뇌가 지금껏 만든 무늬는 어떤 자취일까.
호두를 먹는다. 겉껍질 속에 안전히 감싸인 속살은 인간의 뇌를 닮았다. 두개골에 싸여 평온하게 보호되는 뇌처럼, 호두 역시 단단한 외피에 둘러싸여 있다. 자연이 인간의 뇌를 본떠 호두를 만든 것인지, 우리가 호두에 인간의 뇌를 끼워 맞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호두든, 뇌의 회백질이든 양자론적 관점에서의 기원은 동일하다.
텅 빈 입자로 구성된 양자는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 현상의 세계에 형상을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유는 그 근원에 미치지 못한다. 호두가 뇌인지, 뇌가 호두인지, 호두를 먹어 뇌가 단단해진 것인지, 튼튼한 뇌가 호두를 기억해 낸 것인지에 이르면 호두와 뇌의 경계가 흐려져, 무엇이 근원인지 알 수 없다. 이 모호함은 내 생각과 자아에도 스며든다.
내가 가진 생각은 나의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그 소유관계는 알려고 할수록 흐릿하다. 내가 내 것이라 믿은 생각이 과연 진짜 내 것일까. 나는 그저, 조용히 호두를 쪼개고 가만히 나의 머리를 만져볼 뿐이다.
소유는 약한 생명에게 필요한 방어 기제이자, 문명을 구축하는 첫 단추일 수 있다. 야생의 맹수들은 저장고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저장하고 소유하는 존재들은 살아남기 위해 삶을 체계화하고, 결국 문명을 일군다.
개미를 보면 그것이 선명해지는데 그들은 철저한 역할 분담과 협업으로 거대한 시스템을 일군다. 한 개미 집단은 한 어머니로부터 기원하고, 어머니가 다른 개미들을 철저히 배척해서 섞이지 않는데, 이는 그들 진화의 걸림돌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왕개미는 결혼비행을 하면서 다른 둥지의 수컷들과 교미하여 퇴행을 방지한다.
여왕은 몸속의 작은 서랍, 정낭에 1억 개가 넘는 정자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알을 만든다. 그 정자는 한 번의 비행에서 얻은 것이며, 여왕은 평생 그것만으로 수천만 마리의 자손을 생산해서 대제국을 건설한다.
나는 '신비'라는 단어를 즐겨 쓰지는 않지만, 이 생식 시스템 앞에서 신비라는 단어는 무력하다. 수개미는 아버지 없는 사생아고 여왕의 복제물이며 무능하다. 그들의 의무와 특권은 오직 날 수 있는 꿈. 그 하나다. 그들은 일하지 않으며, 한 번의 비행 후 죽는다.
뇌 주름 하나 없는 그 존재들이 이토록 정교한 생태계를 완성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우리는 인간의 뇌를 연구하지만, 그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을 뿐, 뇌 속의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는 한계를 가졌다. 한 인간의 기억, 감정, 상처와 사유는 주굴주굴한 회백질 주름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음에 위안이 된다. 불완전한 이해 가능성 덕분에 인간은 아직 위엄을 지닌다. 누군가 나의 주름진 뇌 속에서 내 삶의 고뇌를 모조리 읽어낸다면,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폭력일 것이므로.
빅터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을 때, 그는 생명을 창조했을지 몰라도, 그 생명이 감당하게 될 슬픔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회백질의 덩어리 속에서 타인의 육체만을 조립하는 것은, 인간 실존의 깊이를 알지 못한 창조주의 오만이다.
인간이 개미의 뇌로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함으로 존재의 복잡함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안의 신비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