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현재형, 나

by 이채이

바람처럼 머물렀던 이들을 상상해 본다. 사냥에 나서고, 먼 여행을 떠나던 인간 이전의 인간을. 초원 한가운데서, 길을 찾기 위해 공간을 기억하던 존재를. 우리에게 생존의 경험을 물려준 자들. 그 길고 지루한 과정을, 우리는 통사적 전체로 엮어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 이름이 바로 ‘진화’다.


진화는 본 적 없는 장면들을 계통화하고 가지런하게 한 자들의 발명품 같은데, 나는 그들의 탈시대적 통찰과 선점 앞에서 자주 소외감을 느낀다. 상상력으로 시간의 깊이를 되살리려는 그 지성 앞에서 나는 항상 어지럼을 경험한다. 진득하게 서술된 진화의 역사 앞에서, 신조차 침묵하고, 나는 언제나 도착이 늦은 지각생처럼 우물 주물한다.


나의 생각은 진화의 논리 앞에서 머뭇거린다. 진화의 공백은 신선하고도 무기력해서 금세 흩어진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을 진화의 끝으로 설정하는데, 이를 대하는 인간의 오만이 정겹다. 그러나 이 정겹고도 자기 위안적인 설정 앞에 멈춰 서면, 인류라는 거대한 질서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조차 잃게 된다.


나는 진화의 현재형으로 존재함에도 그 흐름의 주체라는 감각은 희미한데, 그것은 무지와 통찰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기억을 조합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통찰의 능력—그것에 끼어들 방법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나의 일상은 얽히고 넘어지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멈칫거리며 조바심을 낸다. 나는 그저 시간과 공간을 허우적대며 떠돌 뿐이다.

동물은 시간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공간 속에서 기억을 엮고 축적해서 시간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기억은 마치 수천 장의 연속된 장면 중, 단 하나의 이미지를 골라내는 능력이 있다. 그렇게 선별된 장면들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시간의 선이 되어 우리를 지탱한다.


기억의 보관이 곧 시간이 된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시간 속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얻는다. 아직 그 관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 힘에 떠밀려 오늘도 하루를 지나고 있다.

나의 하루는 오래된 기억의 뿌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작은 물방울 같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했고, 정념을 담아 들여다보지 않았다. 지나간 하루는 돌이킬 수 없고, 흘러버린 물은 그저 흘러버릴뿐이다.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나는 이 순간의 갈증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과거는 기억이 빚어낸 허상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나는 현재로만 나의 좌표를 알 수밖에 없다. 현재는, 현재만을 질료로 가질 뿐이다.

언젠가는 나의 기억이 시간의 구조를 만들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이름으로 또 다른 가지의 진화에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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