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젖은 길 위로 자전거가 굴러가며 물기를 밀어냈다. 바퀴가 지난 자리는 어지러워 보이면서도 질서가 있다. 그것은 땅 위에 남겨진, 부드럽고도 단단한 궤적이다. 그 무늬는 싸이클로이드다. 원이 굴러가며 한 점이 남긴 자취. 물리와 수학이 한 몸으로 엉켜 만든 질서. 그것은 자연이 그려낸 함수다.
젖은 길 위의 곡선을 따라가면, 한 수학자와 만난다. 17세기, 야콥 베르누이는 물었다.
높이가 다른 두 점 사이를 가장 빠르게 통과하는 선은 무엇인가. 이는 최단거리가 아니라, 최단시간에 관한 물음이다. 이 문제는 라이프니츠와 뉴턴을 비롯한 당대 천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먼저 답을 한 이는 라이프니츠였다. 바다 건너 뉴턴도 편지를 받고 문제를 푼 후 무명의 서신을 보냈다.
싸이클로이드 곡선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해답이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비틀며, 수학의 흐름을 뒤흔들었다.
미적분의 독립적 발견은 곧 학문적 경쟁을 넘어 논쟁으로 번졌고, 수학의 중심축이 흔들릴 만큼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누가 먼저 미적분을 발견했는가?' 이 격렬했던 논쟁은 수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다.
뉴턴이 미적분을 먼저 발견한 것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당시 영국 왕립학회의 수장인 뉴턴이 이끄는 세력이 논쟁을 주도했고, 상대적으로 지지 기반이 약했던 라이프니츠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또한 뉴턴이 시간적으로 먼저 미적분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이 명확했기에, 결국 이 논쟁은 뉴턴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뉴턴이 먼저 미적분의 개념을 떠올렸다는 사실과, 라이프니츠가 이를 체계화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와 방식으로 발전시킨 공로 사이에서, 균형 잡힌 평가를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은 수학적 언어로서의 완성도와 아름다움, 그리고 실용성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지금 우리가 쓰는 ∫, dx, dy 등의 기호는 뉴턴이 아닌 라이프니츠의 머릿 속에서 나왔다. 나는 수학적 계산이나 사고 능력이 부족해서 미적분 앞에 서면 늘 작아짐에도, 이들 기호의 아름다움은 알 수 있다.
수학은 말이 없지만, 말이 되는 형식을 따진다. 그 점에서 라이프니츠는 수학을 조율하고 그에 맞는 질서를 부여했다. 그의 미적분은 품격있고 우아하다.
라이프니츠는 인간의 머릿속 연산을 자동화하고 싶어 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바퀴와 톱니로 계산이 돌아가게 만들고자 했다. 그의 사유는 금속성의 톱니바퀴와 함께 회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계산기였다. 인간 이성이 펜을 던지고 손이 아닌 기계가 생각을 대신한, 그 최초의 장면이었다.
뿐만아니라 그는 이진법 언어를 고안했다. 단 두 개의 숫자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그의 철학적 통찰의 결과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쓰는 디지털 언어의 바탕이 되었다.
그의 뛰어난 업적 뒤에는 그 누구보다 고독하고 고달픈 삶이 있었다. 미적분 논쟁은 라이프니츠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표절로 얼룩진 말년의 외로움과 좌절은, 어쩌면 그가 뉴턴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유 중 하나였을지 모르겠다. 가장 절친한 이들에게 외면받고 고립 속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아이작 뉴턴은 영국의 심장,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혀 있다. 라이프니츠는 독일 하노버의 성 요한 교회 지하에 묻혀 있다. 라이프니츠가 생전에 쌓은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죽음은 쓸쓸하게 기억되었다.
오늘날 라이프니츠의 사유는 지하에 묻히지 않았다. 싸이클로이드처럼, 그것은 지나간 자리에 흔적을 남겼고, 다음 바퀴는 그 길을 따라간다. 어두운 무덤의 침묵 아래서도, 그의 기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빛보다 빠르게, 세계를 돌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