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하찮음에 대하여

by 이채이

죽음의 필연성은 경험으로 인식될 수 없다. 죽은 자는 산 자들의 남은 생을 돌아보지 않으며, 제 것이 아니기에 무한히 가볍다. 산 자에게는 육중한 슬픔도, 죽은 자에게는 하찮은 이유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에 ‘기억의 단절’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돌아가셨다.


나는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벼이 여겼던 것 같다. 처음 겪는 이별은,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당도한 현실 앞에서 더 당황스럽다. 죽음은 내게 그런 것이었다. 죽음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도,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나이도 아니었다.


묘는 가장 먼 산의 골짜기 응달받이에 씌었는데 눈시울을 적실 젊은 어머니를 배려한 택지라고 했다. 그 묘지는 일본식 리키다 소나무와 키 작은 잡목들만 살 수 있는 영양가 없는 푸석한 땅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하릴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찾기도 했다. 진달래가 피면 꽃을 따먹기 위해, 바람이 불면 하늘을 보기 위해.

무덤에 갈 때마다 리키다 소나무 숲이 뿜어내는 묘한 독기는 이곳이 길지가 아님을 대번 알게 했다. 독기를 품은 땅은 푸슬푸슬하고 찰기가 없어 맥없이 바스라 졌다. 오래전부터, 나는 아버지가 그곳 깊은 땅속에서 나와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망자가 편히 몸을 누일 그런 곳이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몇 되지 않는데 그것은 분명 나의 어림 때문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딱 한 번 꿈에 나왔다. 햇살이 따스한 그런 보통의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마을 어귀에 앉아 흘러가는 시냇물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시냇물은 '졸졸졸'이라는 일상의 소리로 흐르지만, 내가 들은 말의 뜻은 날마다 달랐다. 싯다르타가 강가에서 '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나는 물의 흐름이 주는 경쾌한 소리에 온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 같다.


검은색 세단이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다. 내 앞에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셨다. 운전석의 기사도 따라 내렸는데, 급작스런 만남에 대비하지 못한 어린 나는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불쑥 일어섰을 뿐이다.


"아빠?" 놀람을 숨기지 못한 채 불렀다.

"................"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큼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작은 내가 아빠를 올려다보자, 아빠는 한쪽 무릎을 꿇어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빠는 말이 없었다. 마치 귀한 사람을 대하는 경호원처럼, 다정하면서도 사무적인 태도였다. 그 모습은 낯설고, 처음 만나는 사람 같았다.


눈빛에는 어떤 슬픔도 회한도 애틋함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평온했고 그 나름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죽음 너머에도 저들만의 세계가 있어, 그곳에서도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는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건네기 위해 손을 뻗었다. 나는 작은 손바닥을 펴고 그것을 받았다. 검은색 밤송이 같기도 하고, 빛이 났던 것 같기도 했다. 작은 구슬처럼 사방으로 은은한 빛을 퍼뜨리는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 그것을 하나의 모습으로 붙잡지 못해 슬펐다.


아버지는 집 안과 밖을 드나들며 짧은 생을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는 유언 한 마디 남길 새 없이 그 한 생애가 마무리되었다. 꿈에서도 아버지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수십 년 전 꿈에, 단 한 번 다시 만난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주고 가신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십여 년 전에 아버지의 묘를 파묘하고 이장했다. 땅속에서 들어 올린 유골은 검었고 육신을 감쌌던 이승의 마지막 옷은 썩지 못했다. 그 땅의 음습한 기운과 소나무 뿌리의 독기가 아버지의 평화를 방해한 것이라 여겨졌다.


유골이 수습되고, 두개골부터 가지런히 육신의 뼈는 재 정렬되었다. 땅은 어떻게 해서 장정의 육신을 검은 뼈로 변색시키는지 그 세월의 변화 과정을 알고 싶지 않다. 이건 시간의 퇴적도 아니고 육체의 부패도 아니고 뼈의 풍화도 아니었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었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고, 단 4년을 함께 살았으며, 단 한 번 꿈에 나타나 무언가를 건네주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이제, 검게 변한 뼛조각으로 세상 앞에 다시 불려 나왔다.

한참 햇볕을 쪼인 검게 삭은 뼈는 예에 따라 관에 다시 담기고, 햇볕이 드는 남향 산으로 옮겨갔다.


나는 지금도 죽음은 하찮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각도, 이별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그렇게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면, 죽음은 얼마나 가벼운가. 햇살 아래 신록을 바라보는 평범한 아침보다도, 죽음은 어쩌면 더 경쾌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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