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 번씩 가는 곳. 대략 길은 알지만, 어딘가 불안할 땐 반드시 주소를 찍고 네비를 켠다.
확신 없는 기억보다 기계의 안내가 더 든든하다고 믿기 시작한 건, 아마 전자계산기를 처음 본 날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연필과 지우개로 사칙연산을 하던 나에게 ‘주판’을 다루는 것은 다소 신기한 것이었다. 사각 틀 안의 동그란 구슬들을 요리조리 튕기고 옮겨가며 빠르게 계산하는 사람들은 수의 마법사 같았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구슬이 오르내리는 그 동작의 아름다움이었다.
구슬이 구르는 불규칙한 소리, 엄지와 검지가 만들어 내는 현란한 리듬. 그것은 수를 다루는 게 아니라, 의식을 집행하는 듯한 경쾌함이 있었다
그런데 계산기는 달랐다. 손바닥만 한 기계 위에 배열된 숫자와 기호들은 질서 정연했고, 딸깍 한 번이면 계산은 끝났다.
주판의 실체적 아름다움 대신, 전자계산기는 형이상학적 신뢰를 주었다. 내 손으로 한 계산이 맞는지 확인받기 위해, 언제부턴가 나는 계산기의 심판을 기다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판단보다 기계의 결괏값을 더 신뢰하기 시작한 건. 생명이 없더라도, 정확함을 가진 존재는 믿을 만하다는 걸.
운전대 앞의 나는 여전히 그런 신뢰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익숙한 듯 낯선 길을 향할 때면, 나는 늘 내비게이션을 켠다. 그런데 가끔, 네비는 내가 아는 길 대신 먼 길을 돌아가라 한다. 그러면 말없는 감정싸움이 시작된다. ‘고집 센 기계’와 ‘확신 없는 인간’의 실랑이.
내가 알고 있는 길로 방향을 틀면, 네비는 침착하게 말한다. “가능하시다면 유턴하세요.” 사실 네비는 늘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지만, 나는 그 안내에서 미묘하게 뒤틀린 감정을 읽는다. 말투는 정중하지만, 그 속엔 억제된 분노가 느껴진다.
아, 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흔들리는 마음. 운전대를 잡은 나는 조바심이 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그러면 결국, 네비는 지도를 다시 그리고 초록 선 하나로 새 길을 열어준다.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목소리엔 살짝의 꺾임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네비의 ‘헛기침’이라 부른다. 마지못해 길을 인정하는, 기계의 한숨 같은 소리.
네비는 언제나 데이터를 기준으로 말할 뿐이라서, 운전 중 실랑이에서 생기는 나의 불안과 고통은 수량화되기 어렵다.
잠시 후면 눈에 익은 골목과 신호등이 나타난다. 나는 안도하며 환호하고, 네비는 말한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그 한마디에 묘한 감정이 인다.
우리는 결국, 각자의 확신을 고수하다 마침내 타협에 도달한 셈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기술과 인간 사이의 이상적인 거리일지도 모른다. 다투고 의심하다가도, 결국은 함께 길을 찾는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