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이별은 과잉된 사랑의 흔적이다. 넘치는 감정은 결국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렇기에, 채워지지 못한 사랑만이 오래도록 남는다. 부족함은 넘침보다 깊은 긴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팽팽한 대립의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그저 뜨겁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이라 정의해 버리는 오류는, 얼마나 쉽게 반복되는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순간들을 덧붙이며 이별을 연장한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결국 허무로 남는다. 인생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그 허무는 점점 무게를 더한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채우지 못한 공백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음악 앞에서 무방비가 된다. 음악은 문학이 애써 쌓아 올린 견고한 성채를 단숨에 허물어뜨리는 힘이 있다. 가슴을 맞대고 완성한 백 편의 시보다, 마음 한 귀퉁이에 닿는 노래 한 곡이 더한 울림을 남긴다. 음악은 인간 마음의 원초적 어귀부터 말초적 끝단까지 모두 무장해제 시키는, 본능에 가까운 감응의 언어다.
하여, 노래 한 곡을 선물 받는 일은 시 백 편을 받는 것과 맞먹는 위상을 지닌다. 한 소절의 멜로디가 특정 시간이나 장소의 기억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불쑥 되살아난 과거가 왜 이토록 생생하게 이곳을 맴돌겠는가.
오래된 기억은 흐릿하고 느슨해 보이지만, 귓가를 때리는 노래 한 곡이면 무참히 끌려 나온다. 왜 잊힌 감정들이, 보편적 음악의 힘을 빌려 다시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지, 해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시가 시로만 머물지 않고, 시인이 시인으로만 남지 않을 때, 인간의 내밀한 정서는 보편적인 감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음악은 시를 덮지 않고, 시는 음악에 흡수되지 않는다. 그 둘이 맞물릴 때, 고유한 감정은 모든 이의 감정이 된다. 결국 이별도, 허무도 음악 앞에선 다시 말이 된다. 넘쳤기에 끝난 마음도, 부족했기에 남은 감정도, 낡은 음표를 건너가는 선율 속에서 다시 긴장을 얻는다. 시는 그 긴장을 붙잡아서 머물러야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정의하지 못했던 모든 감정은, 이제 노래가 되어 다시 나를 부른다. 시인은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넘쳤기에 끝난 마음도, 부족했기에 남은 감정도 음악 속에서 다시 말을 얻는다. 허무를 견디는 언어는 언제나 시였고, 그 시는 노래가 되어 다시 우리 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