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면

by 이채이

인생이 책이라면, 나는 성공담도, 파란만장한 소설도 아닌, 한 줄의 시처럼 기억되길 바랐던 것 같다.

화려한 결말도, 자극적인 전환도 없이, 그저 긴 여운을 남기는 문장 한 줄이면 족하다고 여겼다. 파란만장한 서사 끝의 절정보다, 한 편의 시처럼 함축된 언어를 남기고 싶어 했다. 누군가의 성공과 부를 부추기기보다는, 다만 한 걸음을 응원하는 용감한 글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시가 되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는데, 인생의 우여곡절을 단어 몇 개로 정리하는 그 마법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다만 숨겨진 문장을 찾아 평생을 방랑하는 시인처럼, 세상의 결을 바꾸고자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불필요한 단어를 덜어내고 또 덜어내다 보면, 마침내 가벼워지는 문장이 남는데, 그런 시였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철학서가 되고 싶다'는 말이 실없는 소리가 아니기를 바라며 평생을 살았다.

책 속의 거장들은 삶의 진실을 외치기보다는,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라고 말했지만, 그 쾌락은 단순하고 절제된 기쁨이었다.

루소는 도시의 문명보다 자연 속의 고독을 더 신뢰했다. 그의 사유는 소란한 진리를 말하기보다, “삶과 죽음은 참으로 가벼운 것”이라는 이치를 담담히 받아들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TV 없이 살아온 세월 내내, 책의 강을 따라 흐르다 말다를 반복했다. 빛이 사라지면 색이 사라지듯, 문장이 없는 삶은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고 믿었다. 나는 오직 문장으로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책장에 오래 머물며, 사유를 기다리는 책이 되고 싶은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의 시는, 나의 철학서는 낡고 구식인 종이책이고 싶어 한다. 글의 밑줄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을 맥박으로 알 수 있듯, 종이 냄새는 시간의 축을 흔들면서 방울방울 흘러간다는 것을 안다.

숱한 바위에 부딪히던 문장은 논리를 잃고, 마음 구석을 한평생 떠돌고 있다. 나는 책꽂이를 지키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지키는 책이어야 한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아직 세상에 꺼내지 못한 말들이 내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다.

허무와 고뇌로 점철된 인생이, 마모된 단어를 안고 목놓아 울지 않아도 되는, 그런 명징한 책 앞에 닿기를 원하고 있다.


책다운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삶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책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가 살아낸 만큼의 문장을 쓰는 일임을 안다. 쓰고, 고치고, 버리고, 남기는 지루한 시간을 통과한 끝에야, 한 줄의 문장이 남는다.

최후에 남는 문장 한 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시처럼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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