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떻게 친구가 되는가?
친구(親舊). 다시금 인간의 언어로 한계를 지은 그 의미를 뒤적여본다. 친구란 ‘오래도록 가까운 사이’, ‘시간과 정이 축적된 관계’라 한다. 북미 인디언들은 친구를 “내 슬픔을 들고 달릴 사람”이라 말했다.
나는 이 두 가지 정의 모두를 흡족히 여긴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오래’란 얼마만큼의 시간을 뜻할까? 멀리 있는 벗이 문득 마음에 떠오르고, 그 친애함이 하늘과 땅 사이를 촉촉이 채우는 순간이 있다. 친구를 떠올리면, 기쁨이 밀물처럼 밀려와 나의 시간과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파도 한가운데, 친구가 있다. 슬픔이 나를 덮쳐올 때, “내가 대신 들고 달려줄게”라고 말하는 달리기 잘하는 친구가 나에게는 있다.
나는 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자란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일에는 설명보다 신비가 더 어울린다는 것을.
내 친구 MK는 참으로 삶과 죽음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대단치 않게 여긴다. 그 덕분에 내 마음 한구석, 돌처럼 얹힌 무게가 언제나 가볍게 덜어진다. 삶을 가볍게 본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삶을 관조하게 된 사람, 그래서 때로는 인간 감정의 덧없음이나 무게를, 단 몇 마디 말로 가볍게 짓이겨 보여 줄 줄 안다. 삶의 당면 문제를 인식할 때 나는 가볍게 세상을 긍정하는 그런 친구에게 묘한 위안을 얻는다.
그녀는 달을 좋아한다. 거의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명상하고 기도 한다.
어느 날은 그녀가 말없이 내게 달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여행지의 풍경 사진을 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기억한다.
얼마 전 ‘물고기자리’라는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녀의 별자리가 궁금해졌다. MK는 ‘게자리’고 주행성은 바로 ‘달’이었다. 우리는 미미한 먼지 같은 존재라서 우주의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달을 품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게자리에 머무는 달의 사람은 감성적이고, 공감 능력이 깊다. 가족을 아끼고, 정착을 소중히 여긴다. 영원히 지구를 바라보는 달처럼, 그녀는 한 자리에 머물며 삶을 가꾼다. 한 번 신뢰하면 깊이 관계를 맺고, 감정의 리듬은 달의 차고 이지러짐을 닮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을 이야기하던 그녀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MK의 친구인 나는 ‘사수자리’인데 주행성은 목성이다.
나는 진리를 향해 떠나는 방랑자다. 철학적 세계에 대한 갈망이 나를 낯선 곳으로 이끌고,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 여행을 즐기고, 구속받지 않는 진리를 좇는 불의 별자리.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며, 강한 신념으로 행동한다. 사람들은 종종 그런 나를 ‘운 좋은 사람’이라 말한다.
그녀가 같은 자리를 지키는 달이라면, 나는 우주를 떠도는 방랑자다. 이처럼 우리는 너무도 다르다. 그런데도 친구가 되었다.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주의 신비로 여긴다.
그렇게 우리는 달이 한 자리에 머무는 밤에도, 목성이 우주를 떠도는 낮에도, 서로의 궤도에서 각자의 빛으로 존재하며 친구라는 기적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