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의 동백에 대해 말할 때..

by 이채이

여름의 선운사는 운무에 싸인 도솔산과 조용한 암자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선운사(禪雲寺)’라는 이름 자체가 선종(禪宗) 불교의 철학과 맞닿아 있어, 참선하는 스님들과 안개 낀 절집의 풍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나에게 선운사는 언제나 애절한 기억과 문학적 감성이 뒤섞인 특별한 장소다.


대학 시절 고창 선운사 계곡으로 MT를 갔다. 미당 선생님의 시 중에서도 '선운사 동구'는 짧고 강한 여운의 시다. 많은 사람이 이 시에 적잖은 여운을 품었으리라.

'선운사 동구'는 절집 이야기가 아니다. 절 밖 막걸릿집 여자의 이야기다. 봄은 일러 꽃이 피지 않은 때, 말라 버린 동백꽃을 본다. 육자배기 한 가락을 뽑아 주던 여인이 목이 쉬어 남은 듯 처연한 동백으로 기억되는 시다. 질마재 신화만큼 신비롭고 허망하다. 신화는 황당한 만큼 위대해지지만 동구 밖 막걸릿집 여인의 등장은 그 모든 신화를 무력화시키는 현실감이 있다.


그날 밤 MT에서 선배님들은 송창식의 '선운사'를 불렀다. 막걸리 한 되에 취해 박자를 놓친 노래는 묘하게 어울렸고, 손바닥 장단만으로도 선운사는 어딘가로 달아나지 않았다. 그렇게 남도의 노래를 부르던 여인은, '선운사'에 취해 장단을 맞추던 젊은이들과 자연스레 겹쳤다.


2박 3일의 MT 동안, 나를 사로잡은 것은 목이 쉰 막걸릿집 여자와 선운사 뒷마당의 동백뿐이었다. 도솔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우거진 동백의 숲에서, 나의 영혼은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나는 선운사를 이토록 농진 하면서도 명랑하게 논할 수 없었다.


그 후, 최영미 작가의 시집에 등장한 '선운사에서'라는 시는, 서정적 슬픔의 끝에 선운사의 동백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것 잠깐이더군

: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

이 시구는 사랑의 시작과 끝, 피고 지는 꽃의 덧없음과 아픔을 절절히 노래했다.


동백을 말할 때 김훈 작가님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자전거 ‘풍운’을 타고 남도를 쏘다닐 때 그는 동백꽃을 자주 언급했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고, 절정에 도달했을 때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고 했다. 그는 후드득 떨어진 동백을 주워 들고, 무너진 백제의 땅에서 한탄했다.


왠지 모르게, 선운사의 동백은 '선운사 동구'에서 운을 띄우고, 최영미의 시에서 마음을 삭이며, 김훈의 동백 서사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30년의 세월을 기다린 '나의 선운사'는 아직 시작도 못 한 채 남아 있다. 이미 세 사람의 시선으로 선운사도 동백도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떤 말도 이 완결성을 건드려선 안 될 것 같다.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고, 온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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