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오래된 건반에 귀 기울이며..

by 이채이

내가 처음 라이하르트의 곡을 들었을 때, 고즈넉하고 가녀린 음을 내는 포르테피아노에 곧장 사로잡혔다. '목동의 탄식'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완성했는데, 바바라 비버의 노래는 연주에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가곡이 끝나도록 나의 영혼은 괴테의 서재 구석구석을 떠돌았고, 거친 듯한 독일어는 포르테피아노의 부드러운 음에 감싸여 오히려 더 낭만적으로 들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Ta3PO4JwTxQ


바바라의 노래와 실비아의 연주는 독일의 ‘바데 하우스’에서 촬영되었는데, 목욕탕이라는 장소의 구조적 울림이 거대한 공명 장치처럼 작용해서일까...

그 공간에서 들려온 포르테피아노의 소리는 음 하나하나가 또렷이 살아 있었다. 부드럽지만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각각의 음은 자신의 고유한 결을 지닌다. 손끝으로 두드려 내는 타악의 떨림은 오히려 온몸에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포르테피아노 연주에서, 개별의 음은 음표와 음표 사이를 조심스레 건너가면서도, 그 미묘한 간격을 흐리지 않는다. 섬세한 강약의 떨림과 긴장감은 때론 서로를 탐미하는 대화를 닮았다. 이 '조심스러운 대화'는 듣는 이를 사색의 세계로 이끌어주어 듣기에 고루 편안하다.


포르테피아노와는 또 다른 음결을 가진 악기가 있다.

클라비코드. 포르테피아노와 모던피아노의 조상으로 불리는 이 악기는 마치 ‘탄금(彈琴)’처럼, 손끝에서 울려 나오는 정적인 떨림을 담고 있다.


괴테는 클라비코드를 두고 "영혼이 연주하는 악기"라 칭송했고, 바흐는 그 섬세한 울림을 오래도록 사랑했다. ‘건반악기의 구약’이라 불리며 고요 속에서 홀로 묵상 연주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악기일 것이다.


클라비코드의 소리는 마치 작은 망치로 유리를 살짝 두드려 깨뜨리는 것 같다. 그 조각들이 공중에 흩뿌려지고, 빛을 만나 무지개를 이루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클라비코드가 만들어내는 마법인 것이다.


이러한 전통 위에 베토벤이 있었다. 그는 초기에 포르테피아노를 사용했지만,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펼치기엔 그 음향의 그릇이 작고 얇았다.

<월광>의 묵직한 저음, <황제> 협주곡의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강렬한 표현은 포르테피아노의 한계였다. 그는 더 넓은 음역과 강한 음량이 간절했다.


모던피아노는 철제 프레임과 해머 구조로 강한 음량을 지탱할 수 있었고, 클라비코드나 포르테피아노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던 대규모 공간을 위한 연주가 가능해졌다. 베토벤은 이 악기를 통해 고전과 낭만 사이를 넘나들었으며, 폭발하는 감정과 고뇌를 동시에 표현해 냈다.


우리는 종종 모던피아노의 연주를 두고 ‘소리가 녹아든다’ 라거나 ‘음 사이를 부드럽게 흘러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클라비코드나 포르테피아노의 연주를 들어본다면, 그 부드러움이 어떤 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클라비코드, 포르테피아노, 그리고 모던피아노까지.

셋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악기이지만, 모두 사색과 정열 그리고 고요함 같은 낭만의 본질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오늘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모던피아노가 아닌, 포르테피아노나 클라비코드의 곡을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열기를 식혀주는 고요한 음악의 분수처럼, 가볍고 청명한 소리가 당신의 하루를 서서히 적시며, 무더운 여름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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