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바 여왕의 도착을 알리는 환영의 나팔 소리가 들린다. 금난새 선생님이 이끄는 뉴월드 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듣는다.
오로지 현악기의 울림으로만 구성된 이 연주. 설렘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 재간이 없지만, 가슴 가득한 벅찬 즐거움만큼은 분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sJPsr6qX0y0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스피카토는 긴장을 밀어 올리며 설렘의 기분을 지속시키고, 흥분의 최고조에 이르러 시바 여왕을 맞이한다. 트릴이나 장식 없이 깔끔하게 다듬어진 음형은 더욱 단정하고 품위 있다. 쌍두마차를 따라 호위하는 수많은 병사와 군중들의 환호와 기대감은 현의 군집만으로도 넘치도록 잘 표현되어 있다.
제1 바이올린 두 대는 여왕을 태운 마차처럼 앞서 나아가며 경쾌하게 리드한다. 스타카토로 잘게 끊어내는 음들은 따각거리는 말발굽의 경쾌함을 닮았다. 마차 위의 시바 여왕은 눈빛 하나로 이 모든 상황을 주재하고 있고, 마치 지혜의 보료 위에 고요히 앉아 있는 듯하다. 멀리 솔로몬의 휘황한 망토가 휘날린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음표라는 기호가 가진 언어성과 회화성을 떠올린다.
비트겐슈타인은 "명제는 현실의 그림이다"라고 했다.
언어의 회화성을 꿰뚫어 본 그의 말은, 악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악보에 샵(#)이나 플랫(♭)이 사용되더라도 언어의 본질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기호들 안에 음악의 회화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선 위에 그려진 다양한 음표가 제각각 어떻게 교향곡으로 읽히고 연주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안에 여러 기호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음은 안다.
음악가들은 음표를 그려 넣으면서 음악의 언어를 상상할 수 있고, 연주를 들으면서 음표들의 현란한 흐름을 캐치해 낼 수 있다.
아름다운 번역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나는, 음표가 어떻게 음과 음 사이를 건너뛰고 휘몰아치고 박을 쪼개면서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듣고 즐기며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연주자들이 악보의 언어를 해석하고, 소리로 번역해 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손끝과 활의 떨림으로, 음표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언어를 비브라토처럼 다양하게 녹여낸다. 그들의 몸은 곧 언어의 악기이다. 결국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외견상으로는 상이해 보이는, 구성물들의 내적 유사성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교향곡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번역의 정밀함과 충실함 때문인데, 악보 언어에서 연주 언어로 번역에 충실한 연주자들의 노고 때문이다. 그들은 기호와 기호 사이의 공백을 해석하며, 음표 너머에 숨겨진 작곡가의 진의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음악 기호를 해석하고 번역하면서 만들어 내는 최상의 호사가 바로 한 편의 교향곡을 듣는 것이며, 이는 천년의 고전 한 권을 읽는 것과 같은 울림을 남긴다.
논리 정연하게 제대로 번역된 책을 읽을 때의 기쁨처럼, 해석의 경지에 닿은 음악가의 연주를 들을 수만 있다면 이해보다 먼저 감동은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