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맨, 뮌헨을 걷는 자

by 이채이

독일 뮌헨의 슈바빙에는 조나단 보로프스카가 제작한 작품이 있다. 흰색으로 도색 한 키 1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물체의 이름은 Walking Man이다. 처음 이 거대하고 흰 것을 마주했을 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과 동시에 묘한 친숙함을 느꼈다.


이 조형물은 눈도 코도, 심지어 귀조차 없이 오로지 걷는 모습 하나만을 남겼다. 걷는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가장 원초적 움직임을 서사하는 것만 같다. 지나치게 작은 머리,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는 마치 외계 행성에서 막 도착한 존재와 같은 구석이 있다. 역동적인 걸음새지만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존재할 뿐이다.


이 형상은 실재의 모사라기보다는 ‘걷는다’는 행위의 이데아에 가깝다. 우리가 ‘걷는다’라고 말할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이미지들, 그 상상의 집합체 중 가장 본질적인 한순간을 추출한 듯하다.


나는 뮌헨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슈바빙을 찾았다. 뮌헨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슈바빙의 초입에 서 있는 Walking Man을 만나게 된다. 아침에는 커피를 들고, 그 앞을 지나쳤다. 하루의 시작도 끝도 함께였달까.


사람들은 슈바빙을 젊음과 예술의 도시로 기억하겠지만, 나에게 그곳은 전혜린의 도시이며, 릴케와 루 살로메의 도시다.


1950년대 후반, 뮌헨대학에서 철학과 심리, 독문학을 공부한 전혜린은 슈바빙의 좁은 골목과 카페, 책방, 음악회, 그리고 젊은 철학도들과의 토론을 글로 남겼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이렇게 썼다.


“비 오는 슈바빙의 오후를 나는 사랑했다. 그 외로움조차 감미로웠다.”


길가에 서서 불에 구운 흰 소시지를 겨자에 찍어 먹고, 신 오이 한 조각과 리모나아데 한 컵을 마시며 하루를 보내던 유학생의 삶. 그녀가 외로움 속에서도 기억했던 맛과 풍경은 내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낯선 도시에서, 나도 모르게 그녀가 남긴 기억의 맛을 따라가게 되었다. 흰 소시지에 겨자를 바르고 프레첼을 먹으면 그녀의 문장이 내 안에서 살아났다.


전혜린이 사랑했던 또 다른 인물, 루 살로메는 뮌헨에서 릴케를 만났는데, 스물두 살의 릴케는 열네 살 연상의 루에게 연정을 품었다. 그의 사랑은 시가 되었고, 그의 절실함은 시간을 초월하며 오래 가슴을 두드리는 듯하다.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전혜린은 훗날, 도서관에서 루 살로메의 사진을 몰래 오려낼 정도로 그녀를 흠모했다고 회고했다. 닮고 싶었던 존재, 자유롭고 고독하되 지적인 그 여인을.


나는 종종 그 조형물 앞에 멈춰 서서 올려다보곤 했다.

릴케와 전혜린의 시대는 달랐지만, 그들은 비에 젖은 슈바빙 거리를 걸었다. 그들이 워킹맨을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형상은 사라졌지만 그 이름이 하나의 이데아로 남은 것처럼. 어쩌면 Walking Man은 세월이 흐른 뒤, 도시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세워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 거인은, 오늘도 전혜린과 살로메가 남긴 흔적 위를 되짚고 있을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바 여왕의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