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속에 숨은 무엇...

by 이채이

여름의 포스텍 지곡회관에는 연못 가득 연꽃이 피어난다. 오가는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기도 하고, 수련 사이를 오가는 잉어를 찾기도 한다. 나는 이 연못을 특히 좋아했는데, 스무몇 해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수면을 가득 메운 수련의 향은 여전히 고혹적이기 때문이다.


수련은 물 위에 떠 있어도 물에 속하지 않고, 진흙 깊이 뿌리가 박혀있다. 연못가 나무들은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햇빛은 수면 위에 은은한 빛의 그림을 그린다. 빛은 하늘에 속한 것이겠지만 이 땅 위에 흔적을 남긴다. 물에 속한 것이든, 하늘에 속한 것이든, 그늘진 물가에 앉은 나에게 그 경계는 무의미하다.


연못을 따라 나 있는 좁다란 오솔길은 공대 학생들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여성이 홀로 연못을 세 바퀴 돌면 이무기가 나타나 데려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성이 적은 공과대 특유의 장난스러운 설화다. 하지만 그런 농담에도 불구하고, 이 연못은 혼자서 천천히 서너 바퀴를 돌며 걷기 충분한 가치를 품고 있다.

학생회관으로 이어지는 백팔 계단을 오르기 전, 이 연못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 마음속에 몇 가지 사색 거리가 생겨 오르막길도 그리 힘들지 않다.


차 한 잔을 들고 연못가에 앉아 있노라면 문득 오래전 한 여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심복(沈福)은 자서전 『부생육기』에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절절하게 기록했다. 아내 운(芸)은 중국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여인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운(芸)은 집안이 가난하여 남편에게 좋은 차를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 아팠다. 연꽃이 피는 계절이면 운(芸)은 연밭으로 달려갔는데, 해가 질 무렵, 꽃잎이 막 오므라들려는 순간에 작은 주머니에 엽차를 조금 넣어 연꽃의 중간에 넣어 두었다. 연꽃 속에 숨겨둔 차 한 줌이, 밤새 꽃의 향기를 머금었다.


연꽃 속에 차를 숨겨 향기를 입히던 여인의 마음. 그 정성이 배어든 차 한 잔이, 우리 마음을 적시는 연꽃 가향차(加香茶)가 되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낭만적인 차를 나는 알지 못한다. 운(芸)만큼 남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애절하게 실천한 여인 또한 보지 못했다. 운(芸)의 이야기는 연화차를 만들어 냈고 그 향기마저도 회자된다.


지금도 연꽃차를 만드는 전통은 남아 있어 그 향기가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이른 아침 연꽃을 따서 그 안에 차를 넣어 잘 봉한 후 냉동하였다가, 연지나 커다란 다완에 넣어 물을 부으면 꽃잎이 하나씩 피어나며 차가 우러난다. 한 두어 시간 두면 다완 가득 연꽃이 핀다. 표주박으로 찻물을 떠서 찻잔에 나누어 마시는 연화차는, 차를 내는 손길부터 마시는 순간까지 그윽한 기쁨을 주는데 차 마시는 즐거움 중의 으뜸이다. 그 옛날 소주의 가난했던 한 여인의 사랑과 지혜가 세월의 힘을 빌어 우아한 자태와 은은한 향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연꽃 피는 계절이면 나는 늘 운(芸)을 떠올린다. 그녀의 마음을 기록한 심복(沈福)의 문장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득한 여운을 남긴다. 연을 보면 가끔 멀미를 한다. 그건 아마도, 향기처럼 퍼져 나온 사랑의 잔상이 내 마음속에 잔물결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cjp8843님께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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