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술 수 없을 때까지 깨져야만 | 8월 19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렇게 시작하기에는 이미 며칠이 지나긴 했다. 원래 목표는 다녀온 당일 밤에 바로 글쓰기였는데 최근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실천을 못했다. 평소라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릴 텐데 건강이 너무 안 좋다 보니 그런 괴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저번에 일지를 쓸 때만 해도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감히 네깟 게 기대를 했냐는 듯 한순간에 몸이 박살 났다.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고장 난 곳이 너무 많다. 6월이었나, 요양차 호텔에 갔던 날 오히려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몇 주를 고생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그래도 이렇게 한 번은 고비를 넘어야 하고, 이번에 이렇게 안 좋았으니 다음에 이만큼 나빠질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위안으로 많은 고난을 넘겼다. 근데… 생각할수록 지금이 더 최악 같다. 더 최악은 없을 거라고 했는데… 역시 천장은 있어도 바닥은 없다. 그래도 6월에는 목, 얼굴, 팔과 다리의 오금, 발 정도만 견디면 됐는데 지금은 전신이 뒤집어졌다.
어떻게 자꾸 나빠지기만 할까.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든다.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고, 나는 계속 참아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견뎌야 하는 고통은 사그라들지도 않고 나를 조롱하듯이 매일 밤은 괴롭다. 괴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무섭다. 밤이 너무 무섭다. 낮에는 조금은 눈물이 나지만 견딜만한데, 밤은 엉엉 울어도 못 견디겠다. 못 참고 긁적이는 내가 싫고, 긁으면 응징하듯 돌아오는 바늘로 박박 긁는 듯한 고통이 무섭다.
울면서 참다 보면 선잠에 든다. 얄팍한 잠은 인내를 희미하게 만들어서 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다 또 아파서 완전히 깨버린다. 심한 곳은 그냥 얇게 포를 뜨는 것 같다. 종종 너무 아파서 그런지 헛구역질도 했다.
긁지 않으려고 쓰다듬기도 하고 때리기도 해 봤다. 나도 할 수 있는 건 해봤는데 못 참겠다. 그냥 눈물만 난다. 억울해서….
양쪽 팔뚝 껍질이 다 벗겨져서 자고 일어나면 잠옷에 살갗이 다 달라붙는다. 반창고나 거즈를 왜 붙이지 않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솔직히 다 똑같다. 그냥 깨끗한 잠옷으로 하루에 두어 번 갈아입는 게 경험상 더 청결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견딘다. 운 좋으면 상처 위에 얄팍한 껍질이 생겨서 옷에 달라붙지 않는다. 운 나쁘면 진물만 줄줄 나는 거고. 일지를 쓰지 못했던 내내 나는 운 나쁜 사람이었다. 온몸이 내내 꿉꿉했다. 어제부터 그래도 아주 조금 괜찮아졌을 뿐이다.
의사는 어차피 생각은 지속될수록 피부에 좋지 않은 영향만 주니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했다. 내 안에 수많은 감정이 있는데, 초조함, 불안함, 억울함 등등… 이런 것들은 피부에 열만 채이게 하니 심호흡하며 그 감정들을 소화하라고 했다. 가려움이 어떤 형태를 띠는지 긁지 말고 관찰하라고 했다. 최대한 해보려고 하지만 효과가 있는 걸까.
의사를 믿고 있어서 이건 시간 싸움이라 먼저 나가떨어지는 게 지는 싸움인 걸 알고 있다. 병마가 더 오래 버티느냐, 내가 더 오래 버티느냐인데 버틸 수 있느냐 묻는다면 나는 100% 버틸 수 있다고 대답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연하게 버틸 수는 없을 것 같다.
분명 이 싸움이 끝날 때쯤이면 나는 완전히 박살 나 있을 것이다. 이미 조각조각 뜯어진 기분이지만…. 여기서 더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버티긴 할 것이다. 진물 딱지로 범벅인 얼굴에 눈까지 불어 터져라 울면서, 다 뜯어진 팔뚝을 껴안고 소리 지르면서….
어차피 나는 더는 갈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