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얼어 죽을 듯 뻥 뚫린 마음이 시리다 | 8월 6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아침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긁는 걸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손톱을 세우고야 마는데, 그럼 안 그래도 약한 살, 겨우 껍데기가 생긴 상처가 벗겨진다. 따가운 건 물론이고 축축하게 진물이 난다.
상처가 깊어지는 것도 물론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손톱으로 내 몸에 상처를 입히는데 그와 동시에 마음까지 다친다는 게 되겠다.
또 인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한 번 긁으면 무척 따가워서 그 자극에 더 긁고 싶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손대버렸다는 자책감, 나으라고 그렇게 주변에서 지원을 하는데 나는 고작 이걸 못 참았다는 죄책감,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무력감….
너무 긁고 싶어서 허공에 손을 쥐락펴락하기도 한다. 손에 아무것도 잡히는 건 없지만 어디서라도 인내심이라는 걸 쥐고 싶은 것처럼 허공을 움켜쥐다가 결국 긴 팔 잠옷을 걷어올리고 팔을 긁는다. 목을 가린 옷깃을 젖히고 목을 긁어댄다.
남는 건 겨우 조금이나마 회복했던 상처들의 악화, 자존감의 손상, 우울감... 순간의 인내 실패는 사채 이자가 불어나듯이 막중한 손실을 가져온다.
밤이 무서울 지경이다. 잠은 오지 않고 팔과 다리, 목은 무척 가렵고 증상이 심한 날은 두피까지 아프다. 참아야 하는 게 너무 많다. 가려운 곳을 긁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를 참다 보면 내가 인내해야 하는 것들이 떠오른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다(발이 찢어져서 오래 걸을 수 없다). 만지고 싶은 것도 만질 수가 없다(손끝이 갈라지고 손등이 부르터 강아지를 만질 수 없다).
몸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하니 몸의 가동 범위는 축소된다. 움직이면 아프니까 움직여도 되는 부위의 움직임까지 조심하게 된다. 그래서 내 발목은 가동성이 좋지 않다.
오랜 병은 환자에게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만 보게 만든다.
언젠가 되찾을 수 있음을 안다. 의사를 믿고 있다. 그렇지만… 몸을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끔찍한 감각들을 느끼면서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다. 희망을 보려면 빛이 새어들어올 틈이 필요한데 내 앞을 가린 부정이 너무 많아서… 그걸 깨 나가는 것도 환자가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할 일이 늘어난다.
맥을 짚은 의사는 저번에 왔을 때보단 나아졌다고 했다. 나는 계속 껍질이 벗겨져 상태가 6월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락세라고 느꼈는데 맥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간단히 진료하고 8월분의 한약을 처방받았다. 그다음은 침을 맞는데, 긁었을 때 안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침을 맞을 때 엄청 따갑다는 것이다. 예상은 했는데 유독 아팠다.
집 가는 길의 날씨는 맑았다. 죽어보라는 것처럼 내리쬐는 햇살 아래를 누벼본 게 언제 적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더위를 무척 싫어해서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으면서, 가지지 않는 게 아니라 가지지 못하게 되니 그 순간을 아까워하게 된다.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털어내지 못한 부스럼이 불편해 몇 시간이고 뒤척인다. 또 밤이 오고 잠들지 못하다 동이 틀 무렵에야 눈을 감는다. 지겨운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