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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태엽 Oct 31. 2024

아픈 몸 수선하기 012

죄인 지태엽 | 8월 25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토요일에 다녀왔는데, 금요일 저녁에 먹었던 두부면이 좀 자극적이었는지 목요일에는 좋았던 상태가 다시 약간의 하락세를 그렸다. 목요일 상태만 유지하면 빨리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멀리서 봤을 때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면 이 정도의 기복은 괜찮으니 1주일 정도만 식단 관리를 잘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전체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조금 우울했다. 자꾸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는 것 같다. 병 앞에서 나는 계속 스스로를 재판대에 올린다. 변론은 듣지 않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나는 판사이자 변호사이자 죄인이다.


조금씩의 틀어짐 정도는 있어야 숨이 덜 막혀서 스트레스도 덜 받을 텐데 내가 규칙을 어겼으면서 죄책감, 자괴감도 느낀다. 그냥 앗, 어겨버렸다. 하면 될 텐데 그건 안된다. 완벽히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마음 한편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어서 그렇다.


한의원이 1주일간 여름휴가로 문을 닫아서 조금 걱정이다. 그 1주일 사이에 상태가 완전히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불안하다. 안 좋으면 바로 찾아가서 조금이라도 진정시켜야 하는데….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워낙 몸이 안 좋은 상태가 오래가면서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불안해 ‘하지 마라’는 말만 들어도 명치가 싸해진다. (먹지 마라, 하지 마라, 긁지 마라….) 그냥 울컥 넘치는 마음이 있는데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울분일까.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서 가끔은 그냥 살갗이 다 찢어지게 긁어버리고 싶다. 물론 그 뒷감당은 다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거지만.


8월 말에 친구들과 가기로 했던 호텔도 못 가게 됐다.

계획을 세울 때는 이런 속도면 8월 말 정도면 여행을 가도 괜찮지 않을까 했었다. 결과는 아니었다. 좋지 않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라는 문장이 자꾸 생각난다. 좋은 결과, 나쁜 결과가 있으면 꼭 후자로 간다. 사실 이것도 내 착각이라는 걸 안다. 꼭 후자가 아닌 경우도 있었겠지만, 늘 머릿속에 남는 건 불행뿐이다. 이삭 줍는 아낙네들처럼 행운들은 흘리고 불행만 주워가는 것 같다.


안 좋은 생각을 하다 보면 대체 내가 뭐가 특별하게 고통스러워서 우울에 빠져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유난 떠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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