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잠을 못 잤다.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이제는 익숙하다. 체념은 몸 곳곳에 녹아있어 이젠 잠을 자지 못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도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고 감당할 수 없는 갖가지 고통을 외면하는 방어기제다. 감정은 외면이 아니라 소화해 없애야 한다는 충고를 몇 번이고 들었지만 내 안에는 압축된 감정이 너무 많다. 감정이 퇴적되는 속도를 소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넘실대던 갖가지 부정은 작은 지진만 있어도 한 번에 범람한다.
오랜만에 화가 났다. 모든 게 거슬리고 힘내자는 말조차 듣기 싫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말하는 엄마한테 엄마 힘내자는 말 못 듣겠어 하고 말해버렸다. 그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속으로 수십 번을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말이 참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진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발화하는 즉시, 아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후회되는 문장인데도.
병과 싸우는 게 어떻게 순조로울 수 있을까. 알고 있지만, 천천히 회복 중이라는 안도보다는 하루하루가 두렵다. 하루 일과가 후회, 체념, 분노, 자괴감, 무력감으로 채워져 있다.
1시 30분 예약이었는데 12시 30분에 잠들었다. 30분을 자고 일어나 병원으로 출발했다. 토할 것 같았다. 진맥이 끝나자 어제보다 위 상태가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토피넛 라떼를 못 참고 마셨더니 그게 문제가 된 것 같았다. 한 잔의 달달한 라떼는 순간의 위로는 되지만 밤 내내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래도 회복 가능한 수준이라 다행이었다. 침을 맞는데 유독 아팠다. 몸이 안 좋으면 바늘이 더 아픈 것 같다.
많이 가려우면 가려움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긁어도 되니까 긁기 전에 관찰하라고 하시는데… 예전보다 바늘로 푹푹 쑤시고 긁는 깊이가 얕아진 것 같다는 것 말고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하나 먹고 싶은 마음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내가 머저리 같다. 모르겠다. 모든 게 잘못된 기분이다. 가려움이라도 없어지면 좋겠다. 내가 긁어서 내 손으로 몸을 망치는 건 비참하다. 이건 익숙해지질 않는 감정이다.
내일이면 벌써 9월이다. 봄, 여름, 가을…. 벌써 세 번째 계절이다. 나는 네 번째 계절에도 이 굴레에 빠져 있을까.
겨울이 오기도 전에 나는 두려움으로 얼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