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태엽 Oct 31. 2024

아픈 몸 수선하기 015

외로움은 일종의 합병증일지도 모른다 | 9월 5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아침 여섯 시쯤 잠들었다가 혈육이 온찜질 팩 갈아주는 기척에 반쯤 깼었다. 무슨 얘길 했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나중에 가족 톡 방을 보니까 아침에 내가 귀를 많이 아파했다는 이야기가 오갔더라.

귀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밤 되면 아리고 쑤시기 시작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대면 그때부터 귀가 떨어져 나갈 듯 고통이 심해진다. 자다 깨다 반복하다가 완전히 일어났을 때 귀와 그 주변이 너무 축축하다.

자고 일어나면 몸 상태가 너덜너덜하다. 거의 전신이 따갑고 쓰려서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일어나 약재 달인 물에 수건을 적셔서 몸을 닦았다. 로션을 듬뿍 바르면 로션 속 수분 때문에 또 따가운데, 그때 따가움과 가려움을 잘 참지 않으면 약간 젖어서 말랑말랑해진 딱지들이 다 뜯어지기 때문에 잘 견뎌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도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최근 영… 작은 의지조차 모으기 어려워서 냉소적으로 변한다. 몸과 호흡을 가다듬다가도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뭔갈 원망하고 싶다. 이 원망은 목적지가 없다.


애초에 무엇도 원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병은 우연의 산물. 전생의 내가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엄마가 늘 자신의 죄가 많아서 그렇다 말하는 것처럼 엄마의 죄가 많아서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된 거다. 담배 한번 안 피우던 사람이 폐에 문제가 생기듯이.

그러나 원망할 것이 없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감정을 쏟아부을 대상이 있다면 그것과 나는 병이 나을 때까지 짝이 되어 부딪히겠지만 저주하고 원망할 곳이 없다는 건 이 고통을 오롯이 나 홀로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향할 곳 없는 썩은 감정들은 괜한 짜증이 되어 새어나간다.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에는 부리지도 않던 짜증을 부리게 된다. 내게 무신경한 친구들에게 화가 나게 된다.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핸드폰을 던지고 싶어 진다. 그렇게 오물 같은 감정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난 외로웠던 거라고….

외로움은 일종의 합병증일지도 모른다.


병원에서는 진맥 결과 상태가 꽤 괜찮다고 했다. 식단도 잘했으니 이렇게 유지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런데 다음 주에 아마 생리가 시작될 것 같다. 나아지려고 하면 이렇게 타이밍이 좋지 않다. 그 시기를 잘 지나가야 회복이 제대로 시작될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 지나가면 좋겠지만, 기대하면 또 실망할 테다. 너무 많은 실망을 마주해서 더는 기대하고 싶지도 않다. 희망을 가지면 안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몸 수선하기 0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